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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중기의 사업재편, 단순 위기 탈출 넘어 '산업 진화'의 신호탄

배터리·SMR 등 신산업으로 체질 개선…

산업통상부가 지난 22일, ㈜선재하이테크와 ㈜상림엠에스피 등 19개 중소기업의 사업재편 계획을 승인했다. 향후 5년간 1,145억 원을 투자해 426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이들의 약속은, 얼핏 보면 정부의 일상적인 지원 사업 발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 숨겨진 함의를 곱씹어보면, 대한민국 제조업의 지각변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 그 단층(斷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제조 중기의 사업재편, 단순 위기 탈출 넘어 '산업 진화'의 신호탄 - 산업종합저널 정책
사진 = 산업종합저널 DB (AI 생성)

이번 사업재편의 핵심은 단순한 ‘업종 전환’이 아닌 ‘산업 생태계의 진화’다. 승인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탈탄소, 고부가가치 소재, 스마트 제조라는 미래 산업의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의 정체에 직면했던 ㈜선재하이테크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보유하고 있던 정전기 제어 기술을 응용해 이차전지 실리콘 음극재의 난제인 부피 팽창을 막는 ‘첨단 분산 소재’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이는 사양 산업의 기술을 폐기하지 않고, 국가 전략 산업인 배터리 분야의 핵심 소재 기술로 승화시킨 모범 사례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가 여전히 시급한 현실에서, 이러한 중소기업의 ‘기술적 변용’은 산업 전체의 내공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효진이앤하이의 변신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동차 차체 자동화 설비라는 전통 제조 영역을 넘어, 온실가스를 수소·메탄올로 전환하는 CCU(탄소 포집·활용) 설비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 기지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어젠다를 주도하는 기술 파트너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다. ㈜세보테크놀로지의 친환경 선박용 로터세일(풍력 보조 추진 장치) 국산화나, ㈜상림엠에스피의 소형모듈원전(SMR) 부품 자동화 설비 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탈탄소, 고정밀, 국산화’라는 삼각 파도는 이제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청사진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소기업의 신산업 진출은 ‘기회’인 동시에, 실패 시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대한 ‘리스크’이기도 하다. 기술 검증 단계에 있는 중소기업에게 실패 비용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승인과 세제 혜택, 자금 지원이라는 1차원적 처방에 머물러선 안 된다. “신산업 진출”이라는 명분 아래 감행되는 이들의 리스크 테이킹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정책의 디테일을 채워야 한다. 실험실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널 수 있도록 실증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산업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성과 중심의 기계적 지원보다는, 기술 축적의 시간을 견뎌주는 인내심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이번 사업재편 승인은 위기 극복을 위한 고육지책을 넘어, 한국 제조업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실험이다. 중소기업은 이제 단순한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산업 정책의 실험장이자 혁신의 주체다. ‘실리콘 음극재’나 ‘로터세일’ 같은 낯선 단어들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여부는, 정부와 기업이 이 실험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완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조의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치열하게 구조조정을 시작한 저 작은 공장들이 바로 그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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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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