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과 정유산업이 탈탄소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산업계와 정부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제2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번 협의회에는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을 비롯해 석유화학·정유산업 관계자 및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업계의 탄소중립 추진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석유화학·정유산업, 온실가스 배출량 24% 차지… 탈탄소화 난관
석유화학·정유산업은 석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특성상 제품 생산과 연료 연소 과정에서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4천 690만 톤으로 전체 산업 부문에서 두 번째로 많고, 정유산업은 1천 590만 톤으로 네 번째를 기록하고 있어 이들 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산업은 탄소중립 달성이 가장 어려운 업종으로 꼽힌다.
탄소규제 확대… 석유화학·정유산업 대응 필요
석유화학·정유산업은 앞으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 청정경쟁법(CCA) 등 주요국의 탄소 규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CBAM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6개 품목에만 적용되지만, 유기화학,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제품과 원유정제 분야로의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 CCA 역시 화학제품, 석유정제품 등 12개 품목을 탄소조정세 부과 대상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아, 석유화학·정유산업의 탄소감축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 탄소감축 인프라 도입 및 제도적 지원 필요성 제기
업계는 이날 회의에서 탄소감축을 위한 인프라 도입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인철 롯데케미칼 부문장은 “석유화학 제품이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에 필수적인 만큼, 수소, 재생에너지,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 등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며 “탄소감축 투자에 대한 경제성을 보장하기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탄소차액계약제도는 정부가 기업의 탄소감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정된 탄소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로,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정유업계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국헌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정유산업은 원료와 제품이 모두 탄소 기반이라 감축기술이 제한적”이라며 “2035 NDC는 기술 개발 속도와 경제성을 반영해 현실적인 경로로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업계는 SAF(지속가능항공유), e-fuel 등 감축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경제성이 낮아 널리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감축기술 개발과 대체원료 공급체계 마련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위해 석유화학·정유산업 긴밀한 협력 필요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산업 부문 저탄소·탈탄소화는 석유화학과 정유업계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두 산업은 공정통합과 저탄소 제품 개발, 상용화를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제조업 발전을 위한 핵심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산업으로서,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저탄소·고기능 소재의 공급 역량 확보를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업계 지원과 무탄소 에너지 확대 약속
정부는 이번 협의회를 통해 석유화학·정유산업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관은 “석유화학·정유산업의 직접 배출 감축은 어렵지만, CCUS 기술과 공정 전기화를 주요 감축수단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정부는 관련 법령을 마련해 R&D, 규제 개선, 무탄소 에너지 확대 등을 통해 탄소중립 달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석유화학·정유산업은 오랜 기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산업이지만, 이제 탄소중립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민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제도적 지원을 적시에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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