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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한국 제조의 다음 10년] 4부_“사라지는 명장 손맛, AI로 살린다”

1.2만 공장 품은 시흥, ‘제조 주권’ 심장부로 2026년 ‘피지컬 AI 확산센터’ 가동

경기도 시흥 정왕동에 들어서는 ‘피지컬 AI 확산센터’는 838㎡ 규모의 로봇·AI 실증 거점이다. 정왕어울림센터 5층 경기시흥 AI 혁신센터 내에 조성되며, 반월·시화 국가산단과 시흥스마트허브를 배후로 제조·물류 기업의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로봇·AI를 실제 산업 현장과 유사한 조건에서 시험하는 역할을 맡는다. 경기도는 1월 말부터 한 달간 입지 공모를 진행해 산업단지 집적도, 기업 수요, 교통 접근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시흥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이번 기획의 마지막 편에서는 이 센터가 전국 피지컬 AI 정책, 성남 연구 거점, 현장 암묵지 이슈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향후 3~5년 동안 무엇이 실제로 시험대에 오르는지를 짚어본다.

“로봇·GPU 공공 인프라”가 정확히 하는 일
경기도 피지컬 AI 확산센터 사업은 2026년 3월부터 2027년 3월까지 1년간 약 30억 원을 들여 추진된다. 핵심 구조는 명확하다. 개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로봇 장비와 GPU 기반 학습 환경을 공공이 구축해 놓고, 기업들은 이 위에서 공정 데이터를 모으고 알고리즘을 시험한 뒤, 검증된 결과만 선별해 각자 공장 라인에 도입하는 방식이다.

[피지컬 AI, 한국 제조의 다음 10년] 4부_“사라지는 명장 손맛, AI로 살린다” - 산업종합저널 FA
Gemini Enterprise (2026. 4. 21.). 제조데이터 파이프라인 개념도. https://business.gemini.google

센터에는 휴머노이드와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AMR)과 같은 장비와 이들을 제어·학습시키기 위한 GPU 서버가 상시 배치될 예정이다. 기업은 여기서 가상 시뮬레이션과 실제 장비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자동화가 가능한 공정을 발굴하고, 센서·비전·모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설비당 수억 원이 드는 장비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파일럿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구조로, 경기도는 이를 통해 피지컬 AI 초기 도입 비용과 기술·인력 장벽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지원 방식도 단순 ‘장비 대여’가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다. 경기도는 성남 피지컬 AI 랩과 시흥 확산센터를 연계해 수요 기업 발굴, 공정 분석, 프로젝트 설계, PoC(개념 검증), 경제성 검토까지 통합 지원하는 체계를 설명회 등을 통해 제시했다. 성남에서 검증한 알고리즘·모델이 시흥에서 실제 생산라인과 유사한 조건으로 시험되고, 그 결과 데이터가 다시 연구·교육 거점으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가 정책 설계의 기본 단위다.

왜 시흥인가: 반월·시화 1만2천 개 공장의 ‘테스트베드’
시흥 정왕동 일대는 반월·시화 국가산단과 시흥스마트허브를 포함하는 제조 벨트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금속·기계·전기전자·플라스틱 등 업종의 중소·중견기업이 밀집해 있으며, 안산·시흥 지역 제조업체 수는 약 1만~1만2000개로 추산된다. 용접·조립·검사·물류처럼 수작업 의존도가 높은 공정도 많아, 로봇과 비전 AI를 도입해 볼 만한 대상 공정이 풍부하다.

경기도는 이런 특성을 반영해 시흥 확산센터를 “현장 중심 피지컬 AI 통합지원체계의 핵심 거점”으로 규정했다. 시흥시 역시 2025년 ‘경기시흥 AI 혁신클러스터’ 조성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바이오·헬스케어 AI 실증과 제조 현장 맞춤형 피지컬 AI 보급, 산학연 협력 인재 양성을 세 축으로 하는 계획을 세워왔다. 확산센터는 이 가운데 특히 제조 현장 실증과 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인프라로, 정왕어울림센터 내 AI 혁신센터와 함께 시흥 전체 AI 클러스터 전략의 물리적 기반을 구성한다.

궁극적으로는 시화·반월 산단 개별 공장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끌어와 표준화하고, 일부는 공용 플랫폼 형태로 공유해 생산성 분석·불량 예측·수요 기반 공급망 관리 같은 AI 서비스로 되돌려주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로 제시된다. 이때 시흥은 경기 남서부 제조 벨트를 겨냥한 1차 거점이고, 향후 안산·화성·평택 등 다른 산단으로 확산 모델을 수출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된다.

암묵지, “8년의 골든타임” 안에 데이터화할 수 있을까
피지컬 AI 논의에서 시흥 확산센터가 가지는 의미 중 하나는 “암묵지 데이터화”를 실제 현장에서 밀어붙일 수 있는가라는 시험장이라는 점이다. 제조업의 산업 특화 데이터는 특정 공정과 설비, 소재 조합에서만 축적되는 특성이 강하고, 수십 년 간 한 공정에 몸담은 숙련공의 감각과 판단이 코드나 매뉴얼이 아닌 몸에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 연구·정책 보고서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로 숙련 기술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 앞으로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을 “암묵지 자산화의 골든타임”으로 보기도 한다. 피지컬 AI 사업의 국가 단위 과제 가운데에도 PINN(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 모델용 제조 융합데이터 수집, 초정밀·초정시성 행동 제어 데이터 확보, 산업 특화 행동 모델(LAM·Large Action Model) 개발 등이 포함돼, 암묵지 수준의 현장 지식을 데이터와 모델로 흡수하는 것이 핵심 목표로 제시돼 있다.

시흥 확산센터는 이런 상위 과제의 “현장 버전”이다. 용접, 금형, 사출, 프레스, 표면 처리처럼 뿌리 공정을 중심으로 고정밀 센서와 비전·모션 캡처를 통해 숙련자의 손동작, 동선, 소리와 진동, 작업 순서, 상황별 예외 대응 등을 수집·분석하는 실증 과제가 추진될 수 있다. 이렇게 추출된 데이터는 개별 기업의 내부 자산으로 쌓이는 동시에, 공공 플랫폼이나 공용 모델 학습 데이터로 일부 활용돼 신입 인력 교육, 타 기업 확산, 국산 피지컬 AI 솔루션 고도화에 투입될 수 있다.

한번 외부 솔루션·클라우드에 종속되면 제조 데이터와 암묵지까지 해외 플랫폼에 얹히게 된다는 우려도 정책 토론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시흥과 성남을 잇는 피지컬 AI 인프라는 이런 우려에 대응해 “국내 솔루션·국내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확보해 제조 주권을 지키겠다”는 방향성을 구현하는 초기 실험장 성격을 띤다.

전국 피지컬 AI 지형 속에서 본 시흥의 위치
피지컬 AI 확산센터는 시흥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앙정부·경기도·지자체가 얽힌 전국 단위 전략의 한 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 전북대 피지컬 AI 실증랩 개소를 통해 조립·검사·라벨링·유연생산 등 기능별 로봇·AI 기술을 시험하는 첫 현장 실증 플랫폼을 열었다. 전북 사업은 2026~2030년 약 1조 원 규모로 계획돼, 고성능 연산 플랫폼과 실증 테스트베드, 연구 클러스터 운영을 포함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추진 중이다.

경기도는 별도로 ‘사람 중심 피지컬 AI’ 비전을 선포하고, 2025년 말 성남 하이테크밸리에 연구·교육 중심의 ‘경기도 피지컬 AI 랩’을 열었다. 여기서는 로봇팔 기반 스마트 공정,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 작업자 협업 안전 등 기술 검증과 함께 기업·학생 교육, 컨설팅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시흥 정왕동 확산센터는 이런 연구·교육 기능을 실제 산단 현장으로 옮기는 “실증·보급형” 거점으로, 두 시설이 하나의 통합 체계를 이루도록 설계돼 있다.
[피지컬 AI, 한국 제조의 다음 10년] 4부_“사라지는 명장 손맛, AI로 살린다” - 산업종합저널 FA
Gemini Enterprise (2026. 4. 21.). 협동로봇 개념도. https://business.gemini.google

서울 역시 2026년 ‘피지컬 AI 선도도시’ 비전을 선포하고, 양재~수서 구간을 잇는 피지컬 AI 벨트와 도심 테스트베드 조성 계획을 내놓는 등, 각 지자체가 서로 다른 강점을 앞세워 실증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흥은 “대형 제조 산단을 끼고 있는 현장형 거점”이라는 포지션을 갖는다.

향후에는 시흥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PoC 사례가 경기도 전체 산단,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 제조 거점과 공유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산업 특화형 피지컬 AI 통합 플랫폼과 국제 협력 과제에서는, 국내에서 만든 자율제조 모델과 표준을 기반으로 해외 공장에 맞춘 현지화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상호 운용 가능한 데이터·인터페이스 규격을 논의하는 구상이 포함돼 있다. 시흥 확산센터의 현장 실증 성과는 이런 상위 전략에 투입될 “현장 데이터”와 “레퍼런스 공장”이 될 수 있다.

결국 시흥 피지컬 AI 확산센터를 둘러싼 핵심은 두 갈래로 모인다. 로봇과 GPU 기반 인프라, 컨설팅 지원이 실제로 중소·뿌리기업의 공정 개선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다. 동시에 현장 숙련자의 암묵지와 개별 공장의 산업 특화 데이터를 국내 플랫폼 안에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피지컬 AI 모델이 어느 수준까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과제다.

정왕동 838㎡ 공간에서 시작되는 이번 시도는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에서 시험하는 첫 단계에 가깝다. 정책 구상이 실제 공장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에 따라 향후 3~5년 피지컬 AI의 방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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