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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Trust me, dear”… SNS 속 스캠의 덫

사랑을 미끼로, 전 재산을 훔치는 사람들, 가상자산 사기의 끝판왕

[칼럼] “Trust me, dear”… SNS 속 스캠의 덫 - 산업종합저널 동향
최근 한 중년 남성이 경찰서를 찾았다. 그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고 1억 원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녀가 보내준 가상자산 거래소 링크에 돈을 넣은 뒤, 출금이 막히자 그제야 사기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첫마디는 ‘돈만 돌려받으면 좋겠다’가 아니었다. “사기라도 좋으니 다시 연락만 와 줬으면 좋겠다.”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로맨스 스캠. SNS나 데이팅 앱에서 외국인 이성으로 접근해 장기간 애정공세를 펼친 뒤, 결국 투자사기로 이어지는 범죄 수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상자산 가격 급등기에 이 수법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1억4천만원대를 돌파하며 1년 새 두 배 가까이 상승하자, 가짜 거래소를 활용한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가 연이어 접수되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 열풍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고, 로맨스 스캠은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파고든다. 결국 이 두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로맨스 스캠의 구조는 단순하다. 멋진 외모의 외국인이 한국 여행을 준비한다며 접근한다. 결혼을 약속하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코인 투자 성공담을 꺼낸다. 피해자가 투자에 의심을 품으면, 사기범은 소액을 투자해 실제 출금해보도록 유도한다. 출금 경험은 확신을 준다. ‘정말 돈을 벌 수 있구나.’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거액 투자를 요구한다. 돈이 입금된 뒤에는 출금 차단, 추가 세금 요구, 잠적. 이 모든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피해자는 사랑과 돈, 두 가지를 한 번에 잃는다.

가상자산 투자사기 중 로맨스 스캠 피해금액은 여타 수법보다 크다. 연인관계로 발전했기에 피해자는 사기범의 말을 거절하기 어렵다. 감정적 지배가 돈의 흐름을 결정짓는다. 경찰과 금감원은 투자 전 상대방의 신원을 반드시 확인하고,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가입을 요구받을 경우 무조건 의심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의심하라’는 문장은 늘 한발 늦게 도착한다. 이미 마음이 빼앗긴 사람에게 의심은 배신이자 공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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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은 로맨스 스캠이 단순한 금융사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범죄 도구로 활용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고립과 외로움이 심화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감각은 돈보다 강력한 확신을 준다. 로맨스 스캠은 바로 그 확신을 사기로 전환하는 범죄다.

통계와 경고 문구만으로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플랫폼과 수사당국의 신속한 공조, 가짜 거래소 차단, 피해금 회수 지원 같은 구조적 대응이 시급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하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의 말에 전 재산을 걸 만큼 외롭고, 사랑에 굶주리게 되었을까.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고립과 결핍이 어디까지 인간을 몰아가는지 보여주는 비극이다.

사랑을 말하며 돈을 훔치는 이 범죄는 오늘도 SNS 속에서 새로운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다. 사기범들의 메시지는 언제나 같다. “Trust me, dear. We will be rich.” 그러나 그 문장이 남기는 것은 텅 빈 계좌와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뿐임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칼럼니스트-창작노마드>
산업종합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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