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배너

[기자수첩] 규제의 관성, 혁신의 목을 조른다

변화는 빠르지만 제도는 멈췄다, ‘新산업 舊규제’라는 한국 경제의 병목

[기자수첩] 규제의 관성, 혁신의 목을 조른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기술은 앞서가는데 제도는 뒷걸음친다. 창의와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에 연구소는 여전히 콘크리트 벽을 요구받고, 반도체 공장은 외부 오염을 차단해야 하는 클린룸 한가운데 40m마다 소방관 진입창을 뚫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농촌 소득을 다각화하겠다는 정부가 내건 영농형 태양광은 ‘8년 시한부’라는 농지법 규정 앞에서 사업성을 논하기조차 어렵다. 신산업이 규제에 막힌 장면들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이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병목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新산업 舊규제’ 사례들은 규제가 언제, 어떻게 공익의 탈을 쓰고 공공의 발목을 잡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원래 규제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한 번 만들어진 규제는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남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혁신을 가로막는다. 한때는 합리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기술과 시장이 바뀌면 규제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필요가 오늘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한국은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단순히 ‘기업이 더 벌고 싶어서’ 내세운 불만으로 치부하는 건 위험하다. 연구소에 벽을 세우는 법규는 이제 창의적인 연구 환경과 충돌한다. 반도체 공장 진입창은 오히려 생산공정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장치가 됐다. 영농형 태양광의 사용기한 제한은 농가의 자립 기반을 흔드는 족쇄로 작용한다. 낡은 규제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기자수첩] 규제의 관성, 혁신의 목을 조른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한국은 변화가 빠른 나라다. 기술도, 산업도, 시장도 민첩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제도는 느리고 무겁다. 규제는 그대로인데 시장만 변화하면, 그 격차는 결국 기업에게는 투자 포기의 이유가 되고, 사회에는 성장의 정체로 돌아온다. 국제 경쟁력의 차이는 기술력보다 이런 제도 유연성에서 판가름날 때가 많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전면 철폐 같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다.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감당할 만큼 유연한 제도다. 낡은 규제와 싸우는 일은 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규제의 관성에 맞서는 것은 이 나라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더는 미룰 수 없는 싸움이다.

‘新산업 舊규제’라는 말이 경제 단체의 단골 구호쯤으로 들렸던 시대는 끝났다. 규제에 안주하는 관료주의야말로 지금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진짜 적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혁신도, 성장도 결국 구호로만 남을 것이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0 / 1000


많이 본 뉴스

[기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새로운 생존 법칙

세계 공급망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과거 ‘저비용·고효율’ 중심의 글로벌 분업 체계는 팬데믹, 미·중 무역 갈등, 지정학적 충돌을 거치며 균열이 깊어졌다. 원자재 확보, 기술 안보, 환경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산업 경쟁력의 기준은 가격이 아니라 안정적 공급망 유지 능력으로 옮겨

[칼럼] 기술 패권의 전환점, 한국 AI가 직면한 현실과 도전

산업 트렌드와 변화하는 시각에 맞춰 정기적으로 칼럼을 업데이트하는 창작노마드입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의 인공지능(AI) 기술 수준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여전히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글로벌 R&D 전략지도'에 따르면, 한국은 AI 4대 핵심 분야(효율적

[기자수첩] 폭염 안전법과 쿠팡 파업 예고에 드러난 노동 현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 산업안전보건기준이 바뀌었다. 이달 17일부터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 ‘2시간마다 20분 휴식’이 법으로 명시됐다. 고용노동부는 ‘폭염안전 5대 수칙’을 발표하며 강제성까지 강조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제도가 마련돼도 그 제도

[기자수첩] 확장과 현실 사이 "킨텍스가 잃어가는 것들…"

국내 최대 전시 인프라인 킨텍스(KINTEX)가 제3전시장 건립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러나 외연 확장의 이면에 드러나는 운영 현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신뢰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현재의 기본 요건 사이에서, 킨텍스는 지금 균형점을 다시 찾아야 할 시점

[기자수첩] "팹리스와 파운드리, 고립을 끝낼 때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열린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는 단순한 업계 간 만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이 자리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구조적 한






산업전시회 일정


미리가보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