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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법이 지켜주지 못한 현장’… 노동자의 여름은 왜 더 뜨거운가

산안법 개정에도 여전한 온열질환 사망… 예외조항·현장 괴리가 노동자 생명 위협

폭염은 반복되고 있지만, 작업장은 멈추지 않는다. 체감온도 33도를 넘는 산업현장에서 ‘2시간마다 20분 휴식’이 법으로 의무화됐지만, 일터에선 여전히 쉴 틈이 없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개정으로 제도는 강화됐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7월 기준 온열질환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고, 사망자 수는 이미 작년 한 해 전체를 넘어섰다. 폭염 속 일터의 온도는 기록된 수치보다 훨씬 더 뜨겁다.

폭염 속 ‘법이 지켜주지 못한 현장’… 노동자의 여름은 왜 더 뜨거운가 - 산업종합저널 동향

지난 23일에는 국회의원 회관 제10간담회의실에서 '폭염 속 온열질환 예장 국회토론회'가 열릴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다.

이날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현장 노동자의 증언을 쏟아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 일터와 일상에 닥친 참혹한 현실이 그대로 전해졌다.

제도적 변화는 있었지만… 예외조항에 갇힌 ‘휴식의 권리’
올해 시행된 개정안에 따르면, 체감온도 31도 이상일 경우 냉방·통풍장치, 근무시간 조정, 주기적 휴식 중 하나 이상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특히 33도 이상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혹은 1시간마다 10분 이상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에서는 야외작업 중지가 ‘권고’되고, 38도 이상에서는 임산부·만성질환자 작업 제한 등 보다 강화된 조치도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공정상 곤란”을 이유로 이 기준이 광범위하게 무력화되고 있다. 콘크리트 타설·철근작업 등 연속공정을 이유로 휴식이 미뤄지거나, 휴식 대신 개인 냉방장비 지급으로 대체되는 일이 빈번하다. 이로 인해 보호장치로 여겨졌던 예외조항이 오히려 위험을 방치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온도계는 시원한 곳에… 기준 회피와 실태 은폐
체감온도 기준도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를 기준 삼지만, 실제 건설현장 등에서는 복사열,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기, 밀폐 구조로 인해 노동자가 느끼는 실온은 이보다 훨씬 높다. 일부 현장에선 온도계를 비교적 서늘한 곳에 설치하거나 아예 측정 자체를 하지 않는 사례도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단순 기상청 자료가 아니라 WBGT(습구흑구온도지수) 등 실측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쿠팡·건설현장 잇단 문제 제기…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8월 1일과 15일 파업을 예고하며 “최소한의 안전 기준도 현장에서는 무력화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시간마다 20분’이라는 규정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작업자는 10~15분 남짓 쉬는 데 그치며, 일부 휴게공간을 제외하면 냉방장치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건설현장에서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구미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거푸집 작업 중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당시 현장엔 별도의 휴게시설도 없었고, 정기적 휴식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노동계·사업주의 상반된 현실 인식
정부는 올여름 4천여 개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불시점검을 예고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포함한 엄정 대응”을 밝히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장비 지원, 민감군 작업 제한 등의 대응 패키지도 가동 중이다.

폭염 속 ‘법이 지켜주지 못한 현장’… 노동자의 여름은 왜 더 뜨거운가 - 산업종합저널 동향

하지만 노동계는 이를 ‘구호 중심 대책’으로 평가절하한다. 실제로는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고, 교대 휴식을 위한 인력 보강 없이 기존 인력만으로 모든 공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법만 있고 현장은 비어 있다”는 증언은 반복되고 있다.

사업주 측에서는 냉방장비나 보냉용품 지급 등 최소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정 특성상 휴식이 어렵다”는 이유로 숙련공 중심으로 작업을 강행하거나, 휴게시간을 형식적으로만 운영하는 관행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체감온도를 실제 환경에 맞게 실측할 수 있는 WBGT 지표 도입”과 함께, “연속공정 등에 대한 예외조항 축소, 인력 충원 없는 정책은 한계”라고 지적한다. 또한 작업장 내 샤워·세척 공간 등 복지 인프라 확충과 더불어, 반복 산재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실효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은 만들어졌다
올해 폭염 대책은 분명히 진화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현장을 떠나 책상에서 만든 규정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 휴식을 강제하는 규정이 있어도 쉴 수 없다면, 그것은 문장일 뿐 제도가 아니다.

“폭염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진정한 대책은 현장을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허은철 기자 기자 프로필
허은철 기자
echheo@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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