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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비자 정책, 혜택인가 허점인가 '제주가 이미 답했다'

무비자 정책의 그늘과 본토 확산…관광 유입이 아닌 책임의 출구를 묻는다

[칼럼] 무비자 정책, 혜택인가 허점인가 '제주가 이미 답했다' - 산업종합저널 정책
한때 제주도는 공항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섬을 오가는 유일한 수단은 배였다. 태풍이나 악천후가 닥치면 며칠씩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 시절의 제주도는 육지와 단절된 독립된 섬이었고, 그만큼 독특한 문화와 사람을 지켜낸 땅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제주국제공항에는 매일 수십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그 비행기들은 때로는 관광객과 체류자, 때로는 불법 체류자들까지 실어 나르는 지경에 있다.

무비자 정책은 원래 제주의 생존 전략이었다. 외국인을 끌어와 섬의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2002년부터 중국인을 포함한 다수 국가 국민들에게 제주도 한정 무비자를 허용하면서, 관광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렌터카가 도로를 메우고, 음식점과 면세점에 줄이 섰다. 소득도 늘었다. 한동안은 성공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제주도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때만큼 밝지 않다.

불법체류자 수는 매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찰의 단속은 강화됐지만, 이미 바다를 건넌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제주도는 섬이 아니라 통로가 되었다. 제3국을 목적지로 삼은 경유지. 일하러 왔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섬. 그중 상당수는 중국인이다. 무비자 정책이 만든 그림자의 중심에 선 이들이다.

이들은 단지 불법체류자로 불리지 않는다. 어떤 날은 불법 숙소를 운영하는 업주로, 어떤 날은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또 어떤 날은 강력범죄의 피의자로 기사에 등장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부’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제주도민들의 불안은 커진다. 언제부턴가 섬 안에서도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관광객을 반기던 그 미소는, 이제 이방인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칼럼] 무비자 정책, 혜택인가 허점인가 '제주가 이미 답했다' - 산업종합저널 정책

정부는 이제 그 실험을 본토로까지 확대하려 한다. 중국 단체 관광객에게 무비자를 다시 열겠다고 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외화 획득과 내수 진작이라는 명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명분이 제주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는다. 숫자는 화려하고, 통계는 늘 그럴싸하지만, 제주라는 작고 외딴 섬이 지금 어떤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지는 수치 바깥에 존재한다.

정책은 숫자로 평가받지만, 현실은 얼굴로 살아간다. 관광객은 흘러가지만, 주민은 그곳에 남는다. 무비자 제도가 다시 전국으로 퍼질 때, 우리는 제주에서 일어난 일을 단지 ‘특수한 케이스’라고 넘겨도 괜찮을까. 도시의 기능은 사람을 들이는 데만 있지 않다.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들을 돌볼 시스템은 갖췄는가,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이 빠진 관광 정책은 단지 유동 인구를 늘리는 실험일 뿐이다.

정부의 무비자 확대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실이 있다면, 바로 제주도다. 그곳은 이미 입증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턱대고 문을 여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확인하고, 필요한 검증을 거친 뒤 비자를 통해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개방이란 무조건적인 허용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해야만 지속 가능하다. 제주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증명해 보이고 있다.
산업종합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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