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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멈춰선 공장의 침묵, 무너지는 사람들”

제조업 위기를 숫자로만 읽어서는 안된다… 현장엔 삶이 무너지고 있다

[기자수첩] “멈춰선 공장의 침묵, 무너지는 사람들” - 산업종합저널 동향
제조업이 무너진다는 말은 단지 산업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두터운 삶의 층이 무너진다는 말이고, 국가라는 공동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눈앞의 지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10곳 중 7곳 이상이 올해 영업이익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적자를 예상한 기업 비율이 흑자 예상 기업보다 높다. 코로나19 때보다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보다 더 뼈아픈 건, 이 모든 위기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은 숫자를 다루지만, 현실은 인간을 다룬다. 지금 제조업 현장에서 흔들리는 것은 단지 수출량이나 수익률이 아니다. 매일 땀으로 기계를 돌리고, 철판을 깎고, 뜨거운 주조 현장에서 몸을 던진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잃고 있다는 말이다. 회계 장부에 적자란 글자가 찍히는 순간,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것은 이들 사람의 이름과 삶이다. 경영 전략은 구조조정을 말하지만, 그것은 곧 가계의 붕괴를 뜻한다. 경제를 말할 때,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을 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와 국회의 대응이 이 위기의 본질에서 한참 빗나가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비용 증가와 제도적 불확실성을 호소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압박, 이자비용 확대 같은 직접적 리스크 위에, 법인세 인상과 기업규제 입법이 덧씌워지고 있다. 불확실한 노동정책, 자의적인 규제,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입법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위기를 견디기보다 빠르게 해외로 눈을 돌린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고용 불안과 공동체 붕괴뿐이다.

정치가 경제를 거꾸로 몰고 가고 있다. 규제 강화를 통한 공정사회 실현이라는 명분이 정작 현장의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그 명분은 공허한 구호가 된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은 이론적으로는 자본시장 투명성 제고를 위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타이밍에, 이 방식으로 도입되어야 하는가. 기업의 숨통을 죄는 법안들이 줄줄이 쏟아지고, 입법 예고만으로도 시장은 냉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활력’이라는 말은 관행적인 수사로 들릴 뿐이다.

[기자수첩] “멈춰선 공장의 침묵, 무너지는 사람들” - 산업종합저널 동향

제조업은 단순한 산업군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자, 압축 성장 시대를 견인한 동력이다. 이 산업을 되살리려면 기술개발이나 인프라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예측 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며, 무엇보다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를 줄이라는 말이 시장 만능주의의 옹호로 들리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을 살피는 눈과 사람을 지키는 손이다.

지금의 위기는 단기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구조와 입법 환경, 정책 철학이 맞물려 일으킨 총체적 위기다. ‘투트랙 지원’이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한쪽 트랙에서 탈선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과 사람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 제조업을 살리는 일이란, 곧 이 나라의 생계를 지키는 일이다. 땀 흘리는 손이 떠나면, 그 다음엔 국가의 뼈대가 무너진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오직 성장의 수치가 아니라, 그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이들의 내일이다.
허은철 기자 기자 프로필
허은철 기자
echheo@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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