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보행자의 '미래 이동 경로'를 예측해 운전자에게 3초 먼저 경고하는 AI 기술을 개발, 국내 최초로 실증에 들어갔다. 기존 시스템이 도로에 진입한 보행자를 '탐지'하는 사후 대응에 그쳤다면, 이 기술은 횡단보도 진입 전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차세대 교통안전의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8월부터 천안시 주요 교차로 4곳(천안역 인근 2곳, 터미널사거리 2곳)에서 ‘예지(豫知)형 보행자 안전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실증 운용 중이라고 4일 밝혔다.
"이미 진입" 아닌 "3초 뒤 진입" 예측… 대응 시간 확보 지자체에 보급된 기존 보행자 알림 시스템은 사람이 수동으로 설정한 '검지(檢知)영역' 기반이라,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까지 위험으로 인식해 불필요한 경보가 잦았다. 카메라 방향이 바뀌면 영역을 재설정해야 했고, 보행자가 도로에 진입한 후에야 경고가 울려 운전자의 대응 시간이 부족했다.
ETRI가 개발한 서비스는 현장 CCTV, 전광판, 제어기, 원격 서버로 구성된다. CCTV 영상을 기반으로 2초 이내에 도로 영역 맵(횡단보도·차도)을 자동 생성해 위험 위치를 식별한다.
핵심 원천기술은 '시각 메모리 기반 예지형 시각지능 기술'이다. 기존 영상 분석이 사물 인식 수준에 그쳤다면, 이 기술은 사람의 기억 메커니즘을 모사해 시각 정보를 누적·회상함으로써 장시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미래 상황까지 예측한다.
이를 통해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진입하기 약 3초 전 미래 경로를 예측하고, 위험도를 0~4단계로 나눠 운전자용 전광판에 시각적으로 표시한다. 실제 횡단할 보행자에 대해서만 경보가 발생해 불필요한 알림이 줄고, 운전자는 우·좌회전 시 사각지대의 보행자까지 미리 인지할 수 있다.
산업안전 확장·2027년 상용화 목표 이 기술은 교통뿐 아니라 물류센터, 공장, 건설현장 등 산업안전 분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작업자와 지게차·로봇 등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 충돌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알려 관리자의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연구책임자인 문진영 ETRI 시각지능연구실 박사는 “'보행자 이동 경로를 예측해 운전자에게 3초 먼저 알려준다'는 새로운 교통안전 기준을 현장에서 실증했다”며 “지자체와 협력해 예지형 교통안전 기준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석필 천안시장 권한대행(부시장)은 “국내 최초 예지형 보행자 안전 AI 기술이 천안에서 실증을 시작해 뜻깊다”며 “교통사고 예방과 시민들의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신도심까지 실증을 확대해 안전한 교통 도시 천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스마트 교통 솔루션 기업에 기술이전, 2027년경 본격 상용화할 계획이다. 또한, 천안 외 지자체와 추가 실증 협의를 추진하고, 향후 지자체 교통관제 시스템과 연계해 전국 단위 보행자 안전망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나아가 자동차·이륜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도 예지형 안전 기술을 확장해 ‘교통사고 제로화’를 목표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SCI 28편·특허 55건… '시각 메모리 기술'이 핵심 연구 성과는 학술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보행자 위험도 예측 기술은 지난 5월 SCI(E) 저널에 게재됐으며, 8월에는 세계적 학회인 AVSS 2025에서 관련 논문 3편이 발표됐다. ETRI는 이 시스템에 대해 미국·중국·유럽 등 3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으며, 핵심 요소 기술(맵 자동 생성, 횡단 예측, 경로 예측)로 국내 5건, 미국 3건의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해당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술진흥원(IITP)이 지원하는 '장기 시각 메모리 네트워크 기반 예지형 시각지능 핵심 기술 개발' 과제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ETRI 연구진은 이 과제를 통해 상위 0.5% SCI 저널 포함 SCI급 논문 28편, CVPR 논문 5편 포함 탑티어 학회 논문 19편, 국제 우수학술대회 논문 23편, 국내외 특허 출원 55건(등록 18건) 등 우수한 연구 성과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