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이 흔들리고 있다. 범용재 중심의 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수입재가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는 사이, 국내 철강산업은 구조적 위기를 마주했다. 실제로 철근, 열연 등 공급과잉 품목이 속출하고, 국내 수요는 정체된 반면, 설비는 줄지 않고 쌓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의 무역장벽 강화, 탄소중립 압박까지 더해지며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이 시급해졌다.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지난 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고, 철강산업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고도화’로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개편 계획을 밝혔다. 이번 대책은 크게 △설비 조정 △통상 대응 △고부가·저탄소 전환 △상생협력 등 4대 축으로 구성된다.
“설비 줄여야 산다” …
핵심은 ‘설비 조정’이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공급과잉이 심화된 품목(예: 철근, 형강, 강관)은 기업의 자발적 사업 재편을 유도하되, 정부는 고용유지 등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철근처럼 수입재 비중이 낮고 국내 설비만 과잉된 품목은 구조조정 여건 조성에 착수한다. ‘기업활력법’ 적용 가능성과 함께 세제 지원도 논의 중이다. 반면 열연, 냉연, 아연도강판처럼 수입재 침투율이 높은 품목은 우선 통상 대응을 선행한 후, 시장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설비 조정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반대로 전기강판, 특수강처럼 경쟁력이 유지되는 품목은 과감한 선제 투자를 유도해 미래먹거리로 키운다.
“불공정 수입·관세 장벽, 끝까지 간다”
국제 통상 환경도 철강을 위협하는 요소다. 미국의 50% 고율 관세, EU의 세이프가드 제도 강화는 철강 수출의 큰 걸림돌이다. 정부는 한미·한EU 협상을 병행하고, ‘철강 수출공급망 보증상품’(4천억 원), ‘이차보전 금융지원’(1천500억 원) 등 수출기업 금융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한편, 반덤핑·보세구역 우회 수입 등 불공정 수입 대응도 강화된다. 품질검사증명서 의무화, 반덤핑 회피방지 제도 강화, 철강 부원료 할당관세 품목 확대 등 제도적 보완도 병행한다.
정부는 ‘특수탄소강’을 미래 주력품목으로 지정하고, R&D 로드맵 구축과 함께 2천억 원을 투입해 기술력 확보에 나선다. 관련 세제혜택도 검토 중이다. 단순 수출 확대보다, 고부가가치 철강재 시장 선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철강의 탈탄소화를 위한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8.1천억 원 규모)도 본격 추진된다. 청정수소 확보, 전기로 전환 지원, 스크랩 수급 안정화 등 저탄소 전환 인프라도 함께 마련된다. 폐알루미늄 캔 국내 우선 사용, 구리스크랩 불법수출 단속도 병행 추진된다.
‘철강 도시’도 함께 살려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은 철강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강산단과 연계된 지역경제, 하청업체, 연관산업의 존망과 직결된 문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지역 고용지원, 산업 다각화 등 지역경제 충격 완화책도 병행한다.
또한, 철강·원료·수요 산업 간 기술개발 및 수급협력, 공정별 가격 안정화 논의 등 전후방 상생체계도 강화한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품질 미달 철강재 유입 차단을 위해 KS 인증관리, 비규격재 점검, 안전솔루션 도입 등도 추진된다.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은 정부가 철강산업을 단기 연명이 아니라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고강도 설비 감축과 탈탄소 전환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투자 의지와 지역 사회의 이해, 노동자 보호 장치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철강은 여전히 우리 산업의 근간이자, 미래 산업의 뼈대다.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철강산업을 다시 설계하되, 그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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