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배너
윙배너

이차전지 표준화 ‘패권 전쟁’… 한국, 규범 만들기 전면에 나섰다

글로벌 배터리 경쟁, 제조력 넘는 ‘표준력’의 싸움으로 전환

EU·中 표준 주도 속 K-배터리 점유율 하락… "이제는 규칙을 만드는 쪽으로"

“기술이 세계를 움직이던 시대에서, 표준이 시장을 규정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계에선 최근 이차전지 시장을 이렇게 설명한다. 배터리 제조 기술력만으로는 시장을 선도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이차전지 표준화 전략’은 이러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단순한 기술 선진화가 아니라, 국제 규범을 선점해 향후 시장의 질서를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국가기술표준원이 밝힌 목표는 명확하다. 2030년까지 25종의 이차전지 표준을 개발하고, 이 중 9종은 국제표준화기구(ISO·IEC)에서 공식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추진한다. 특히 사용후 전지의 재제조·재활용 기준과 탄소발자국 산정 방식까지 포함한 것은 ‘배터리 전 생애주기 표준’ 선점을 겨냥한 구상이다. 단순한 기술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 규범이자 ESG 경쟁력의 토대다.

이차전지 표준화 ‘패권 전쟁’… 한국, 규범 만들기 전면에 나섰다 - 산업종합저널 에너지

이 배경에는 급변하는 세계 표준 지형이 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배터리 규제법(Batteries Regulation)’을 본격 시행한다. 이 법은 배터리 수출국이 제품에 대한 공급망 정보, 재활용 비율, 탄소배출량 등을 상세히 보고하도록 요구한다. 중국 역시 자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독자 표준체계를 구축 중이다. 실제로 국제표준화기구 산하 배터리 관련 기술위원회(IEC TC21/TC105)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해마다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위상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2022년 24.6%였던 한국 배터리 기업 점유율은 2024년 18.4%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중국계 기업의 추격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비즈니스의 ‘룰’을 선점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도 크다. 한국 배터리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국제 기준’에서 한 발 늦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정부는 상용·차세대·사용후 전지의 세 분야를 각각 표준화 대상으로 지정했다. 예컨대 상용 분야에서는 ‘셀 열폭주 시 방출가스 분석’처럼 배터리 화재 대응과 직결된 안전성 항목들이 포함됐다. 차세대 전지 부문에서는 전고체·리튬황·소듐이온 전지를 중심으로 성능평가·소재 분석 등 미개척 영역의 규범화를 노린다. 사용후 전지의 경우, 탄소중립과 직결되는 ‘자원순환’ 규정에 집중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의 재활용·재사용 기준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사후 수익 모델’로 주목받는 분야다.

표준화 추진은 단순히 정부 주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산업부는 산·학·연으로 구성된 ‘K-배터리 표준화 포럼’을 중심으로, 민간 기업 기술과 국제표준화기구 활동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확대 중이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주요 배터리 기업이 참여 중이며,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 소재 기업도 협력 체계에 포함돼 있다. 기술로드맵 공유와 표준초안 작성, 시범적 적용까지 민간이 초기 단계부터 관여하도록 한 것이 핵심 구조다.

업계에선 정부가 국제표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면,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와 중복 규제 해소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EU의 인증요건(Ecodesign, CE 등)이나 미국의 IRA 세부지침 등과 연동할 수 있는 ‘규범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제 배터리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 싸움”이라며 “국제표준 선점을 위한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된 만큼, ‘빠른 추격자’에서 ‘룰 세터’로 전환하지 않으면 기술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0 / 1000


많이 본 뉴스

바이오 인공장기, 의료 혁명 이끌까… 심장이식 대기자들에게 희망

최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긴급 후송된 환자는, 쓰러진 지 5분이 넘은 바람에 심장이 멈췄다. 이 환자는 보조장치인 ECMO(체외막 산소화장치)를 사용하여 연명했지만, 심장은 결국 10일 후에야 다시 뛰었고, 그 기능은 70%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 환자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2025년 소비 시장 5대 키워드 'S.N.A.K.E' 제시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2025년 소비 시장을 이끌 5대 키워드로 ‘S.N.A.K.E’를 선정하며, 경기 둔화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유통 기업들이 생존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7일 발표한 ‘2025 유통산업 백서’를 통해 S.N.A.K.E(Survival, Next

이차전지 제조장비, 차세대 기술로 2030년 50조 원 시장 전망

이차전지 제조장비 산업이 2030년까지 5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특히 건식 전극 공정과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핵심 기술로 주목받으며, 관련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한국기계연구원(이하 기계연)은 최근 발간한 ‘기계

급증하는 고령층 취업… 일할 의지는 넘치지만 일자리는 부족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60대 이상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가 급증하고 있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6%에 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60대 이상의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024년 9월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

DPP 도입, 국내 기업에 도전이자 기회

2027년부터 EU가 디지털제품여권(DPP) 제도를 순차적으로 의무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5일 'EU 디지털제품여권(DPP) 동향 및 GS1 국제표준 기반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DPP 정책 동향과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디지털제품여권(DP






산업전시회 일정


미리가보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