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단단한 것들만이 미래를 지탱한다. 탄소섬유와 그래핀으로 대표되는 탄소기반 소재들이 한국 산업의 돌파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일 서울 aT센터에서 개막한 ‘카본코리아 2025(CARBON KOREA 2025)’는 기술과 정책, 산업이 만나는 이 전환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탄소산업진흥원,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이 행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탄소나노소재의 융복합과 AI'를 화두로 21일까지 이어진다.
현장에는 국내외 100여 개 기업과 기관이 집결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 현대자동차, 한국카본 등 국내 간판 기업은 물론, 독일 에어버스 CTC(Airbus CTC), 중국 중푸카본파이버(Zhonfu Carbon Fiber) 등 글로벌 기업들도 참가해 탄소소재 생태계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펼쳐냈다. 그러나 전시의 진짜 메시지는 화려한 부스가 아니라 협약서와 수상자들, 그리고 산업 정책의 디테일에 숨어 있었다.
탄소소재, '부품'에서 '국가 전략소재'로 격상
과거 탄소소재는 항공·방산 등 일부에서만 쓰이는 '강하지만 비싼 소재'였다. 특히 탄소섬유는 일본과 미국 소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 한국은 수입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풍력 블레이드, 수소탱크, 전기차 차체 등 고강도·경량화가 필수인 산업이 재편되며 탄소소재는 단순 부품이 아닌 '국가 전략소재'로 격상됐다.
가장 주목받은 순간은 단연 ‘해상풍력 블레이드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이다. 휴먼컴퍼지트, 신성소재, 삼우기업, HS효성첨단소재, 도레이첨단소재, 국도화학, 재료연구원(KIMS), 전기연구원(KERI), 에너지기술연구원(KIER),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등 10개 기업·기관이 전라북도 및 군산시와 손잡았다. 소재부터 설계, 가공, 테스트까지 한 도시에서 완결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단순 협업을 넘어선다. 그간 일본, 덴마크, 중국에 종속됐던 풍력 블레이드의 소재는 물론 설계권과 인증 체계까지 한국이 가져오겠다는 뜻이다. 탄소소재 산업을 '종속'에서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개념 연구' 아닌 '양산·실행'에 정책 초점
유공자 포상 수여식에서도 정책 신호가 읽혔다. 탄소섬유 국산화와 복합재 기술개발에 공헌한 7명이 포상을 받았다. 초고강도 탄소섬유 개발 등에 기여한 김철 HS효성 전무가 대통령 표창을, 풍력블레이드 복합재 기술 자립을 이끈 김민영 국도화학 이사가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이 외 현대자동차 박상윤 책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정우태 연구위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배일준 연구위원, ㈜익성 박상희 연구소장, ㈜한국몰드김제 고광운 수석 등 5명이 장관 표창을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포상 대상이 기술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제품 양산과 공급망 구축까지 연결한 인물들 중심이라는 것이다. 산업부가 '개념 연구'가 아닌 '실행 중심 정책'을 펼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최우혁 산업부 첨단산업정책관은 "고성능 소재 개발뿐 아니라 실증 및 인증까지 전주기 지원을 확대해 탄소소재 강국 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종수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회장 역시 "탄소소재는 산업 한계를 극복할 혁신 엔진"이라며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주문했다.
기술·자본·정책이 한자리에… '실거래' 중심 기획
전시는 기술 쇼케이스를 넘어 실거래 중심으로 기획됐다. 한국복합재료학회와 공동 개최하는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복합재 공정 자동화, 미래형 항공기, 그래핀 등이 다뤄진다. 이창희 로봇융합연구원 박사, 강윤주 KAI 전문위원, 밥 얀시(Bob Yancey) 헥셀(Hexcel) 이사, 마르쿠스 루멜(Markus Rummel) 레비디안(Levidian) 관계자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선다.
수출 상담존, 기술이전 설명회(탄소 테크데이), B2B 미팅 등도 함께 열려 기술과 자본이 연결되는 비즈니스 현장을 연출했다. 탄소산업이 기술과 정책, 자본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산업 시뮬레이션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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