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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속 유럽으로 가는 韓 배터리, '정책 블라인드' 속 유럽행 여정길

EU 시장 12.5억 달러 핵심 거점… 정부, 통상 채널 다각화로 '제도 예측성' 확보 시급

"예측이 불가능한 규제가 가장 무섭습니다."

EU 진출을 타진하거나 이미 유럽 현지에 발을 디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규제는 예고되었지만, 정확한 시점도, 구체적 요건도 정확히 모르겠다"고 한다. 유럽의 배터리법이 ‘시작되려는 중’이라는 모호한 시제 속에서, 기업은 비용을 예측하지 못하고 전략을 확정짓지 못한다. 산업은 긴장을 품은 채, 조용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불확실성 속 유럽으로 가는 韓 배터리, '정책 블라인드' 속 유럽행 여정길 - 산업종합저널 정책

지난 26일,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참석했다. 자리에는 EU 시장에 진출해 있는 이차전지 및 소재 기업들이 모였고, 수출 현황부터 현장 애로까지 실질적 이야기가 오갔다. 여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EU 수출에서 이차전지 및 소재가 핵심 품목으로 떠오른 건 단순한 수출 성과 이상의 의미"라고 언급하며, “그 무게만큼 정부도 대응의 정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EU는 우리나라 이차전지 수출의 약 15%, 금액으로는 12.5억 달러에 이르는 주요 시장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그 외에도 양극재·음극재 등 핵심소재 기업들이 현지 공급망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한국 배터리는 지금, 유럽 땅에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 진출이 순탄하게만 흐르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EU 배터리법을 중심으로 한 환경·인권·공급망 관련 규제들이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며 기업들은 일종의 ‘정책 블라인드’에 갇힌 느낌을 호소하고 있다. 규제 방향은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대의로 정당화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조항들이 언제, 어떻게 적용될지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이 불확실성이 전략 결정의 발목을 붙잡는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장 증설이나 물류망 재편 같은 투자는 몇 년을 내다보고 해야 하는데, 규제가 몇 개월 단위로 바뀔 수 있다는 건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차전지처럼 리드타임이 긴 산업일수록 제도 예측가능성은 생존의 문제다.

여 본부장은 "정부는 단순한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서,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 환경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EU 및 회원국과의 통상 채널을 다각도로 활용해, 규제 적용의 예측성을 높이고, 과도한 규제 확산을 사전에 완충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지금, ‘유럽행’이라는 불확실한 여정 한가운데 서 있다. 기술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비관세 장벽이 쌓이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전략적 조율자여야 한다. 수출은 계약이지만, 진출은 협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정밀도와 기업의 응집력이다. 유럽이 시장인 동시에 또 하나의 규제 주체가 된 시대, 배터리 산업은 이제 기술뿐 아니라 통상 역량으로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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