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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톺아보기] "내 이름이 팔렸는데, 왜 내가 숨어야 하나"… 유출 피해자의 씁쓸한 독백

스팸 폭탄에도 '피해 입증'은 막막… "우리는 잃었지만 잃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산업톺아보기] "내 이름이 팔렸는데, 왜 내가 숨어야 하나"… 유출 피해자의 씁쓸한 독백 - 산업종합저널 동향
문자는 평일이 아닌 주말에 받았다. ‘쿠팡을 이용해 주시는 고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알림을 끄고 화면을 닫았지만, 뒷목이 서늘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들 겪는 일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피해는 시작이 아니라 끝이 없었다. 비밀번호를 바꾸고, 계정을 폐쇄하고, 택배 주소를 다른 곳으로 설정해도 어딘가에서는 또 내 정보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웃긴 건, 이 모든 공포가 ‘피해’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신적 피해는 법적으로 애매하고, 금전 피해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나는 잃었지만 잃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봤다. “너도 그 문자 받았어?”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이미 잊은 듯했다. “뭐 별일 있겠어? 그깟 스팸 문자 좀 오는 거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사적인 조각들이 팔려나가는 느낌이라는 걸. 그 누구도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언가 해보려 했다. 소송? 분쟁조정? 정보보호위원회 신고? 검색창을 열자마자 닫았다. 말은 길고, 과정은 복잡했다. 어딘가에서는 집단분쟁조정이라는 것도 시행 중이라지만, 그건 사업자가 응해야만 진행된다 했다. 소송은 더 어렵다. 나 같은 개인이 큰 회사를 상대로 뭔가를 요구한다는 건, 백지 위에 연필 하나로 싸우는 일이다. 그마저도 인지대부터 내 돈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창을 닫았다. 나는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으로 남는다.
[산업톺아보기] "내 이름이 팔렸는데, 왜 내가 숨어야 하나"… 유출 피해자의 씁쓸한 독백 - 산업종합저널 동향

생각해보면 이상한 구조다. 피해자는 수백만인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수십 명도 되지 않는다. 올해 쿠팡 유출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만 3천만 명이 넘는다는데, 실제로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손에 꼽힌다. 이 구조는 마치 일부러 설계된 것처럼 조용하다. 목소리를 내는 게, 오히려 손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렇게 대부분은 입을 닫고, 사건은 사라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세상은 너무 빠르고, 기업은 너무 크다. 하지만 제도가 생긴다 해도 여전히 걱정된다. 누가 나서 줄까? 누가 이 고단한 싸움을 함께 해줄까? 데이터가 빠져나갈 땐 한순간이지만, 그 뒤를 수습하는 건 고립된 개인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잃은 것은 정보가 아니라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내 이름이 팔리고, 내 기록이 거래되었는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단소송이든, 공중피해보상이든, 동의의결이든.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누군가 말해야 한다. 그건 단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라고. 데이터 뒤엔, 사람이 있다고.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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