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인구는 줄고 공장은 멈췄다. 사람의 일을 대신할 존재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등장한 것은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조립하며, 눈으로 감지하는 ‘사람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였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산업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더 이상 연구실의 전시물이 아니라, 실제 산업의 전면으로 진입 중인 기술이다. 특히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 현장에서, 이 로봇들이 '새 플랫폼'이자 '인력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10년 내 시장 25배 확대… 변곡점은 ‘양산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2025년 15억 달러에서 2035년 378억 달러로 약 25배 성장할 전망이다. 출하량은 2025년 2만 대에서 2035년 138만 대로 연평균 53% 증가가 예상된다.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2025~2026년을 기점으로 ‘연구개발 단계’에서 ‘양산 전환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에서 비롯된다. 연구소는 “현재는 수작업 중심의 연구용 생산이 주류지만,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양산 체제 구축을 선언하면서 3~5년 내 생산능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류부터 제조, 가정까지… 로봇의 확산 시나리오
상용화 초기에는 작업 난도가 낮고 인력 부족이 심각한 물류 분야에서 가장 먼저 도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복적 피킹, 포장, 검수 작업 등 자동화 설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비정형 업무’를 보완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중기에는 일부 자동차 등 정밀 제조공정에 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가정 내 가사·돌봄 분야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된다. 다만 가사 돌봄 영역은 높은 안전성과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만큼, 범용 AI(AGI) 수준의 기술 성숙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제한 조건이 붙는다.
테슬라, 중국 기업 선두… “가격·양산력 따라 판도 요동”
현재 글로벌 선도 주자는 테슬라(미국)와 Figure AI(미국), UBTech·Unitree(중국) 등이 꼽힌다.
테슬라는 2026년 1분기 3세대 ‘옵티머스(Optimus)’ 공개, 하반기 생산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연간 생산량이 100만 대 수준에 이르면 가격이 약 2만 달러 선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Figure AI는 10월, 대량생산을 염두에 둔 ‘Figure 03’을 공개하고, 연간 1만 2천 대 생산 체제를 운영 중이다. 중국 UBTech은 누적 계약금 1억 달러를 넘기며 산업·상업용 모델을 다양화했고, Unitree는 고급형부터 저가형까지 풀 라인업을 구축해 가격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한국 기술력 85% 수준… “양산보다 실증 기회 노려야”
한국은 2004년 ‘휴보(HUBO)’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를 세계 3번째로 개발했지만, 이후 후속 개발 지연과 함께 글로벌 경쟁에서 점차 뒤처져 왔다. 보고서는 현재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력이 미국·중국 대비 약 85~90%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보급형 기술력은 중국 100 기준에 한국이 90 수준으로 근접한 반면, AI 소프트웨어나 양산 경험에서는 격차가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1위 로봇밀도(근로자 1만 명당 1,012대)와 연 6조 원의 로봇 매출을 가진 제조업 강국으로, 실증과 상용화 기반은 탄탄하다는 강점이 있다.
로봇 1대에 반도체 5천 개… 부품 산업과 ‘윈윈 구조’
휴머노이드 1대에는 최대 5천 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연산용 AI 칩, 이미지센서, 모터 제어용 MCU 등 고성능 반도체의 수요가 집중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이에 따라 1대당 반도체 탑재액이 1천500달러 이상에 이를 수 있으며, 이차전지 역시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게 된다.
보고서는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부품사와 로봇 기업 간의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 핵심 부품 국산화를 통해 ‘로봇이 부품 산업을 먹여 살리는’ 구조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분 포인트: 로봇, 한국 제조의 ‘히든 카드’
왜 중요한가(Why it matters): 휴머노이드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인구 절벽으로 비어가는 공장을 채울 유일한 대안이자, 정체된 반도체·배터리 산업을 다시 뛰게 할 거대 플랫폼입니다.
핵심 결론(The bottom line): 미·중이 주도하는 AI·완제품 시장에서 정면 승부는 승산이 낮습니다. 대신 세계 1위의 ‘제조업 현장’을 실증 무대로 내어주고, 그 로봇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심장과 혈관)’ 공급망을 장악하는 것이 한국의 진짜 승부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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