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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고환율의 공식… 중소기업에겐 기회 아닌 생존 공포

원달러 환율 1400원 시대의 그늘, 수출 특수 대신 원가 쇼크만 남아

고환율은 수출 기업에 호재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공식이 한국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드는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소기업계에는 수출 특수라는 기대감 대신 구조적 위기감만 감돌고 있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가격 경쟁력이 생겨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통념이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현재의 중소기업 제조 구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진 고환율의 공식… 중소기업에겐 기회 아닌 생존 공포 - 산업종합저널 동향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과 수입을 병행하는 중소기업 635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는 이러한 고환율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기업은 40.7%에 달한 반면, 이익을 봤다는 기업은 13.9%에 불과했다. 고환율이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기회가 아닌 비용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현장의 비명은 구체적이다. 기업들은 고환율 피해의 핵심 원인으로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81.6%)을 지목했다. 여기에 외화결제 비용 증가(41.8%)와 물류비 상승(36.2%)까지 겹치며 제조 원가는 전방위로 치솟고 있다. 과거에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생겨 물량을 늘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건을 만들 원료를 사오는 비용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뛰어오른 탓에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가격 전가력의 부재다. 원가가 오르면 이를 납품 단가나 수출 가격에 반영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응답 기업의 절반이 넘는 55.0%는 원가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이나 해외 바이어와의 협상력에서 밀리는 중소기업들은 고환율로 인한 비용 충격을 고스란히 내부 출혈로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출 전용 기업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수출만 하는 기업조차 62.7%가 환율 영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고환율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마진 확대로 이어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중소기업의 글로벌 수익 모델이 환율이라는 외부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파도를 맞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기업의 87.9%는 환리스크 관리 수단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당장의 자금 흐름을 막기 급급한 상황에서 전문 인력과 비용이 드는 금융 기법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제시한 적정 환율 마지노선은 1,362.6원이었다. 이미 시장 환율이 1,400원대 중반을 향해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중소기업들은 적정 구간을 한참 벗어난 위험 지대에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내년 환율이 1,500원 선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41.9%에 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장은 정부에 단기적인 수출 지원책보다 생산 기반을 지킬 수 있는 구조적 방어막을 요구하고 있다. 안정적인 환율 운용 노력은 물론이고, 해상 및 항공 물류비 지원(35.6%)과 원자재 가격 상승분 보전(32.0%) 등 실질적인 비용 절감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의 지적처럼 수출보다 수입 비중이 높은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에서 고환율은 명백한 악재다. 지금 정책 당국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외환시장의 그래프가 아니라, 붉은색으로 정정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표다.

수출 강국의 뿌리는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고환율이라는 가뭄이 길어지는데 물을 주지 않으면 그 뿌리는 결국 말라비틀어질 수밖에 없다. 1,400원이라는 숫자는 누군가에게는 호재일지 모르나, 현장의 중소기업들에게는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공포의 현실이다.
Bottom line
원·달러 환율 1천400원대 고착은 중소기업에 수출 호재가 아니라 원가·물류·금융비 부담이 동시에 덮치는 생존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The Big Picture
수입 원부자재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 제조 구조에서 고환율은 가격 경쟁력 개선보다 비용 폭등을 먼저 유발한다. 환율 상승 효과가 마진으로 연결되던 과거 공식은 구조 변화로 사실상 붕괴됐다.

Why it matters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대다수는 환리스크 관리 수단도 쓰지 못한다. 환율 충격이 누적되면 수출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Key points
피해 기업 40.7%, 수혜 기업 13.9%
원가 상승 원인: 수입 원부자재 81.6%, 외화결제 41.8%, 물류비 36.2%
원가 전가 불가 55.0%, 환리스크 관리 미활용 87.9%
중소기업 적정 환율 1천362.6원, 정책 요구는 물류비·원자재 비용 완화
김지운 기자 기자 프로필
김지운 기자
jwkim@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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