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더 이상 탈것이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이동하는 데이터센터이자 실시간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플랫폼이다. 엔진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운전자는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지금, 기술이 정점에 도달하는 이 시점에서 자율주행을 둘러싼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단순히 센서를 누가 더 정확하게 만들었느냐, 라이다 해상도가 몇 픽셀이냐 같은 하드웨어의 우열 경쟁이 아니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차량의 뇌는 누가 설계하는지, 도시와 인프라는 어떤 논리로 바뀌는지, 인간의 노동과 윤리는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둘러싼 총체적인 권력 투쟁이다. 더 빨리 달리는 차가 아니라, 더 넓은 생태계를 통제하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되는 판. 우리는 그 정글의 입구에 서 있다.
이 기획은 자율주행 기술의 겉면을 넘어서, 기술, 자본, 법, 도시, 인간성까지 포괄하는 다섯 개의 단면을 통해 ‘자율주행 이후의 세계’를 미리 그려본다. 도로 위에 부는 혁신은 과연 누구의 속도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제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차를 통제할 것인가"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성패는 센서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에 달려 있다. 하나의 자동차가 1초에 수백 메가바이트의 정보를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그 데이터가 누적·분석돼야만 차량이 진짜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확보하고 해석하느냐가 자율주행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점은 이미 학계와 산업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주행의 맥락·위치 정보·제어 신호·센서 출력 등 다양하고 정교한 데이터는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와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좌우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테슬라의 기술적 우위는 하드웨어나 AI 모델보다, 700만 대 이상의 플릿이 축적한 70억 마일의 실주행 데이터에서 비롯된다. 이 데이터는 차량의 주행 환경, 교통 상황, 운전자 반응 패턴을 포함하며, 단순 수집이 아닌 쉐도우 모드에서 이탈 상황만 선별적으로 전송된다. 클라우드를 통해 축적된 고품질 시나리오 데이터가 AI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핵심 연료다.
실제로 특정 자율주행 기업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복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고도화하며, 운전 상황을 재현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테슬라도 비공식적으로 수집 차량 데이터를 통해 자율주행 성능을 반복 개선한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곧바로 핵심 문제로 넘어간다. 이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수집하는 정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위치·속도·운전 습관·도로 상태 등 민감한 개인 정보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소유권과 통제권, 프라이버시 문제를 놓고 글로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차량 소유자가 데이터의 주체라는 관점이 보고서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제조사가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하는 방식에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고, 법적 정합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미국 FTC는 2026년 1월 13일 GM과 OnStar에 대한 최종 동의명령을 확정했다. 3초마다 위치정보를 수집해 명확한 동의 없이 보험사에 판매한 '스마트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문제 삼아, 5년간 소비자신용보고기관 대상 데이터 판매를 금지하고 20년 동안 명시적 동의(opt-in) 기반 수집을 의무화했다. 사용자의 데이터 접근·삭제·수집 거부권을 보장하고, 역사적 데이터를 파기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단순한 소비자 보호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자율주행 데이터를 둘러싼 통제권 경쟁의 전초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러한 데이터의 통제권이 단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에만 머물러 있을까. 아니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EU 데이터법(Data Act)은 2025년 9월 최종 가이던스를 확정하고 2026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보험사·대여회사·정비업체가 차량 데이터를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제조사의 알고리즘 기반 파생 데이터는 보호한다. 현재의 불투명한 소유권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려는 전략적 시도다. 데이터의 가치가 수천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산업계가 전망하는 상황에서, 이 법안은 단순한 기술 규제가 아니며 자율주행 생태계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전략적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데이터 자체는 기술적 자산이자 경제적 자원이다. HD맵은 자율주행 핵심 요소로, 실시간 변화 데이터를 수집·반영하는 기술이 결합될 때 가치가 확장된다. 현재 글로벌 HD맵 시장 규모는 약 11억~31억 달러로 추산되며, 2032년까지 연평균 10~30% 성장이 전망된다. 시장가치는 '수천억 유로'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나, 맵리스 기술 확산 속도에 따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처럼 자율주행 시대의 진정한 경쟁은 물리적 알고리즘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의 소유·통제·활용’ 경쟁이다. 단일 차량이 아니라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학습하고, 규제 틀과 데이터 거버넌스를 선점하는 자만이 자율주행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기술의 진화는 곧 데이터의 권력 투쟁이 되고 있다.
저작권자(c)산업종합저널.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