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더 이상 탈것이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이동하는 데이터센터이자 실시간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플랫폼이다. 엔진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운전자는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지금, 기술이 정점에 도달하는 이 시점에서 자율주행을 둘러싼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단순히 센서를 누가 더 정확하게 만들었느냐, 라이다 해상도가 몇 픽셀이냐 같은 하드웨어의 우열 경쟁이 아니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차량의 뇌는 누가 설계하는지, 도시와 인프라는 어떤 논리로 바뀌는지, 인간의 노동과 윤리는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둘러싼 총체적인 권력 투쟁이다. 더 빨리 달리는 차가 아니라, 더 넓은 생태계를 통제하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되는 판. 우리는 그 정글의 입구에 서 있다.
이 기획은 자율주행 기술의 겉면을 넘어서, 기술, 자본, 법, 도시, 인간성까지 포괄하는 다섯 개의 단면을 통해 ‘자율주행 이후의 세계’를 미리 그려본다. 도로 위에 부는 혁신은 과연 누구의 속도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제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차를 통제할 것인가"이다.
도로 위에 자율주행차가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기술이 발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의 노동과 책임 체계가 다시 쓰여야 한다는 선언이다. 한때 운송업의 중심에 있던 운전이라는 직업은 자율주행 기술의 도래와 함께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변화는 산업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교통사고의 94%는 인간 운전자의 인지·판단·조작 오류에 기인한다는 NHTSA 연구가 있다. 인지 오류(주의 산만)가 41%, 판단 오류(과속, 오판)가 33%, 조작 오류가 11%를 차지한다. 인간의 부주의·피로·방심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므로, 기계가 이 영역을 대체하면 사고율이 감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기대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핵심 명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도로 위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만큼, 도로 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화물 운송기사, 택시·버스 운전자, 배달 기사 등 운전 기반 직업군은 자동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노동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사회적 충격이다. 다양한 학술 연구에서도 운전자 중심 직업군이 자동화로 인해 감소할 가능성과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율주행차가 사람 대신 스스로 운전할 때 윤리적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알고리즘을 통해 판단을 내리는데, 이 판단은 때로 삶과 죽음의 선택을 수반한다. 유명한 철학적 사고 실험인 트롤리 문제와 유사한 상황에서 “차가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선택은 이미 AI 윤리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윤리적 교차점은 단순히 기술적 세부 설계 문제를 넘어, 사회의 가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명확하지 않다. 기존의 교통사고 책임 체계는 운전자의 과실을 전제로 삼았다.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주도하는 사고라면 책임은 운전자,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부품 공급사까지 여러 주체에게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유럽·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법적 논쟁과 제도 정비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일관된 국제적 기준은 없다.
한국 역시 자율주행 기술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 체계는 아직 완전하게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의 법 체계는 운전자의 과실을 기준으로 한 민사·형사 책임 체계를 바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운전자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명확한 책임 규정, 손해배상 구조, 보험 체계 등은 지속적인 법제 정비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동화는 반복적이고 위험한 노동의 감소를 의미하고, 사고 감소 가능성은 많은 생명을 구할 잠재력을 갖는다. 다만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현실은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난감하다. 자율주행 기술은 운전대를 놓게 만들지만, 그 대신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일자리와 책임, 그리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자율주행 기술은 단순한 도로의 변화가 아니다. 사회 질서, 법적 책임, 노동 구조의 재편을 의미한다. 기술이 사회적 가치와 충돌할 때, 그 해법은 단지 기술력 향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제도의 재구성일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운전대를 기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중심에 서서 사람과 기계의 공존을 정의하고 책임을 분배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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