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더 이상 탈것이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이동하는 데이터센터이자 실시간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플랫폼이다. 엔진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운전자는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지금, 기술이 정점에 도달하는 이 시점에서 자율주행을 둘러싼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단순히 센서를 누가 더 정확하게 만들었느냐, 라이다 해상도가 몇 픽셀이냐 같은 하드웨어의 우열 경쟁이 아니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차량의 뇌는 누가 설계하는지, 도시와 인프라는 어떤 논리로 바뀌는지, 인간의 노동과 윤리는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둘러싼 총체적인 권력 투쟁이다. 더 빨리 달리는 차가 아니라, 더 넓은 생태계를 통제하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되는 판. 우리는 그 정글의 입구에 서 있다.
이 기획은 자율주행 기술의 겉면을 넘어서, 기술, 자본, 법, 도시, 인간성까지 포괄하는 다섯 개의 단면을 통해 ‘자율주행 이후의 세계’를 미리 그려본다. 도로 위에 부는 혁신은 과연 누구의 속도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제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차를 통제할 것인가"이다.
중국의 자율주행은 기술 실험이 아니다. 전시된 기술이 도시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베이징, 우한, 충칭의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바이두 ‘Apollo Go’는 단지 자동차가 아니다. 지방정부와 도시 인프라, 기업이 함께 설계한 생태계의 최전선이다. 이 차량들은 정해진 테스트 구역이 아니라, 실제 유료 승객을 태우고 도로를 누빈다. 완전 자율주행(L4)이 이미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됐고, 누적 탑승 수는 수천만 회에 달한다. 중국은 자율주행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 도시를 먼저 재배치했다.
중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기술이 준비되었는지를 묻기보다,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체계를 먼저 깔아주는 방식이다. 도로는 자율주행 차량에 맞춰 설계되고, 신호 체계는 차량-서버 간 통신을 전제로 조정된다. 주차장, 버스 정류장, 횡단보도까지도 센서가 감지할 수 있도록 재배치되고 있다. 이는 단지 도로의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인프라와 알고리즘, 정책이 사전에 동기화된 도시 운영 모델이다.
규제 역시 기술의 뒤를 쫓지 않는다. 포니.ai는 선전시로부터 도시 전역에서 1천 대 이상 로보택시를 운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는 단순한 샌드박스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테스트베드로 작동하도록 구조화된 승인 체계다. 중국은 행정, 기업, 도시가 하나의 기술 생태계를 이루며, 기술이 실험이 아니라 일상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자율주행은 47개 시범구역, 시속 60km 제한, 무인운행 금지라는 3중 제약 속에 있다. 사고 발생 시 운전자·제조사·소프트웨어 개발사 간 책임 분담 기준이 불명확하며, 도심 인프라는 V2X 통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정부는 2027년 L4 상용화를 목표로 하지만, 업계 기술 수준은 L2.5~3에 머물고 있다. 정책은 위험 최소화에 초점을 두고, 인프라는 여전히 인간 중심으로 설계됐다. 기술의 진보보다 사회적 수용성, 법적 뒷받침, 제도적 유연성이 더디다. 기술은 나왔지만 체계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제는 인정할 때다. 자율주행의 승패는 센서 정밀도나 알고리즘 예측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더 먼저 도시 전체를 기술 실현장으로 만드는가, 데이터 거버넌스와 법적 책임체계를 명확히 하는가, 운영체제 생태계를 장악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은 준비됐으나, 체계가 뒤처지면 승자가 될 수 없다. 규제가 아니라 체제가, 기술이 아니라 생태계가 경쟁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한국이 여전히 기술을 실험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그 기술을 이미 도시 안에 배치하고 있다.
저작권자(c)산업종합저널.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