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우 지식재산처 차장이 AI·바이오 스타트업을 위한 초고속심사 제도를 발표하고 있다.
기술의 수명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시대에 스타트업에 특허는 단순한 증명서가 아닌 생존의 갑옷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평균 14.7 개월이라는 기나긴 심사 대기 기간에 발이 묶여 있었다. 투자를 유치하려 해도 특허권이라는 확답이 없으면 자본은 움직이지 않았고, 해외 분쟁에서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일쑤였다. 행정의 시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거대한 지체에 지식재산처가 응답했다.
지식재산처는 AI와 첨단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초고속심사 전용 트랙을 신설하고 23일 시행에 들어갔다. 지식재산 기반의 국가 창업 시대를 열겠다는 강력한 승부수다. 정연우 지식재산처 차장은 "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속한 권리 확보가 중요하다"며 "1개월 이내에 심사 결과를 제공하여 스타트업이 연구 핵심 성과를 조기에 보호하고 투자와 사업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파격적인 시간 단축이 핵심이다. 1년 넘게 걸리던 심사 결과가 단 한 달 만에 나온다. AI와 바이오는 기술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심사 기간이 늘어지면 권리를 확보하기도 전에 기술이 사장될 위험이 크다. 지재처는 AI와 첨단바이오 분야에 각각 연간 2,000 건씩, 총 4,000 건의 초고속심사 물량을 전격 배정했다.
신청 자격의 문턱도 대폭 낮췄다. 창업기업은 물론 벤처기업과 이노비즈기업까지 포괄하며, 바이오와 밀접한 헬스케어 분야까지 촘촘하게 지원한다. 연구 성과가 곧바로 투자와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골든타임을 사수하겠다는 전략이다. 비용 역시 기존 우선심사 비용인 특허 20만 원 수준을 유지해 초기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부담을 없앴다.
수출 실적이라는 낡은 잣대를 치워버린 점도 눈에 띈다. 그동안 창업기업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도 당장 수출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지재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손을 잡고, 해외 진출 지원사업에 참여 중인 기업이라면 수출 실적이 없더라도 초고속심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매년 2,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혜택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가능성만 있다면 글로벌 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미리 확보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 우리 스타트업이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길에 깔린 자갈을 치우겠다는 의지다. 정 차장은 "향후 수출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결과를 신속히 제공하여 우리 창업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학과 공공연구소의 연구실에 잠들어 있던 기술도 시장으로 향한다. 그간 대학이나 공공연은 상업적인 실적을 증명하기 어려워 우선심사 활용에 제약이 많았다. 제도 개선으로 교원 및 학생 창업이나 연구원 창업 등 창업 준비 단계의 출원까지 우선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기 전부터 국가가 보호막을 쳐주는 셈이다.
숙제는 남았다. 초고속심사 확대가 일반 심사의 지연이라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연우 차장은 "대규모 특허심사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며 "심사 인력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여 원하는 기업들이 원하는 시기에 특허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민 카드는 스타트업들에게 제대로 뛸 운동장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이다. 지식재산처 출범 1호 정책인 초고속심사가 과연 우리 스타트업들을 글로벌 유니콘으로 밀어 올리는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기술이 자본이 되고, 자본이 다시 혁신이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속도로 꿰어내겠다는 지재처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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