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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탄소 저감이 가르는 조선업 패권, 日 재건 로드맵에 K-기자재 올라탄다

건조 능력 2배 확대 나선 일본, 인력난·환경규제 돌파구로 한국 AI·친환경 기술 주목

용접 불꽃이 튀는 도크 대신, 모니터 앞 데이터 제어실이 조선소의 심장부를 차지해 가고 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낡은 설비로 고전하던 일본 조선업계가 4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GX-ETS) 의무 시행을 맞으며 생존의 기로에 섰다. 탄소 배출이 곧 비용으로 환산되는 구조 속에서 일본은 조선업을 경제안보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재정비하고, 디지털·탈탄소 전환을 가속하기 위한 해외 기술·기자재 도입도 모색하고 있다.

데이터와 탄소 저감이 가르는 조선업 패권, 日 재건 로드맵에 K-기자재 올라탄다 - 산업종합저널 부품
개념 시각화 = 산업종합저널 (AI 활용)

1973년 전 세계 신조선 준공량의 48.5%를 차지했던 일본 조선업은 1990년대 이후 한국·중국의 부상 속에 점유율이 꾸준히 하락해 2025년 기준 5.4%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2025년 12월 ‘조선업 재생 로드맵’을 수립하고, 2035년까지 자국 내 선박 건조 능력을 2024년 대비 두 배인 연간 1,800만 총톤(GT)으로 확대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선박의 디지털화(DX)와 탈탄소화(GX)에 대한 대규모 투자, 조선사 통합·설비 확충·연구개발(R&D) 지원 등 산업 재건책을 본격 추진 중이다.

목표는 크지만 현장의 과제도 분명하다. 숙련공 고령화와 인력 부족으로 생산 자동화와 로봇 도입, 자율운항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조선소 체계를 서둘러야 한다. 선박 설계부터 유지보수까지 전 공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전환 솔루션, 데이터 공유·표준화 체계 없이는 건조 능력 확대가 쉽지 않다. 여기에 수소·암모니아·액화천연가스(LNG) 등 친환경 연료 추진 시스템과 탄소 저감 장치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기자재·시스템에 대한 해외 협력 수요도 커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1일 발간한 ‘일본의 조선업 부흥정책과 진출 기회’ 보고서는 이런 흐름을 짚으며 한국 조선기자재 기업에 열리고 있는 틈새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1970년대 일본이 글로벌 조선시장 점유율 약 50%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신조선 준공 기준 5%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일본 정부가 ‘조선업 재생 로드맵’을 통해 △선박 건조 체제의 강인화 △조선 인재 확보·육성 △탈탄소·디지털화를 통한 게임체인지 △안정적 수요 확보 △우방국·글로벌 사우스 연계를 5대 축으로 내세웠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선체·블록 조립 기술을 넘어, 데이터 표준화와 친환경 연료 공급망 구축을 포함한 차세대 선박 기술 일부 영역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K-조선기자재 기업들의 일본 시장 공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KOTRA는 부산시, 한국조선기자재공업협동조합(KOMEA)과 함께 22일부터 24일까지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 최대 조선·해양 전시회 ‘씨 재팬(Sea Japan) 2026’에 참가해 ‘K-조선기자재 우수 제품관’을 운영한다. 국내 20개사는 AI 기반 선박 안전관리 시스템, 친환경 선박 기자재, 선박 설계 및 유지보수 솔루션 등을 전면에 내세워 일본 조선사·선주사와의 상담에 나선다. 단순 부품 전시를 넘어 데이터 기반 공정 자동화·탄소 저감 기술을 시연하며, GX-ETS 도입으로 높아진 일본의 탈탄소 수요를 겨냥한 수출 계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조선업의 ‘게임체인지’ 방향으로 디지털·친환경 전환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조선사·선사·대학 등은 로드맵에 맞춰 기업 통합과 설비 투자, 자율운항·원격제어·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과 실증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올해 4월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GX-ETS)가 의무화되면서, 일본 조선사·선주들은 수소·암모니아·LNG 연료 추진 시스템과 탄소 저감 장치, 노후 선박의 효율 개선용 기자재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인력 부족과 설비 노후화가 겹친 조선소 현장에서는 로봇·센서 도입, 자율운항 기술과 연계한 디지털 전환 솔루션 및 유지보수 간편화 설계 수요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일 조선업 관계를 “경쟁과 협력이 혼재된 ‘코피티션(coopetition)’ 구조”로 본다. LNG운반선·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과 차세대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는 수주 경쟁이 심화되는 반면, 선박 기자재와 디지털 솔루션 영역에서는 상호 보완적 협력 여지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조선업을 경제안보 핵심 산업으로 재정의하면서, 양국이 국제 환경 규제 설계·친환경 연료 공급망 구축·차세대 선박용 기자재 개발 등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관묵 KOTRA 부사장 겸 경제통상협력본부장은 “일본이 내놓은 조선업 재생 로드맵은 해운·조선 시장의 큰 변화를 한·일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일본이라는 까다로운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겠다”고 말했다.
산업종합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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