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도심 보도를 주행하는 배달로봇의 카메라에 포착된 행인의 얼굴과 차량 번호판이 선명한 원본 그대로 인공지능(AI)에 입력된다. 그동안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로막혀 모든 피사체를 뿌옇게 뭉개뜨린 ‘모자이크 영상’으로만 학습해야 했던 로봇이 비로소 실물 데이터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규제 샌드박스가 자율주행 로봇의 인지 정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 케이블TV를 소상공인 전용 커머스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유통 실험을 동시에 가동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6일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열고 대한상의 샌드박스지원센터가 지원한 과제 3건에 대해 특례를 승인했다.
뉴빌리티(NEUBILITY)가 신청한 영상정보 원본 활용 자율주행 배달로봇 시스템 고도화 과제가 실증특례를 확보하면서, 배달로봇이 촬영한 원본 데이터를 AI 고도화에 직접 투입하는 길이 열렸다.
뉴빌리티 실증사업은 자율주행 배달로봇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한 원본 영상을 AI에 학습시켜 보행자, 장애물, 신호등을 정밀하게 식별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한 영상의 경우 정보주체 동의 없이는 활용이 불가능했다. 과학적 연구 목적의 예외를 적용받더라도 얼굴 등을 식별할 수 없게 처리해야 했기에 로봇이 실제 환경을 오인하는 한계가 있었다.
심의위원회는 원본 데이터 활용이 자율주행 기술의 인지 정밀도를 개선하고 급정거와 회피 등 안전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판단해 특례를 결정했다. 다만 연구 목적 한정 활용, 개인 식별 목적 이용 금지, 제3자 제공 금지, 데이터 보호대책 마련 등 엄격한 안전장치를 부대조건으로 명시했다. 이상민 뉴빌리티 대표 씨는 원본 데이터를 활용해 복잡한 도심에서도 정밀한 주행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향후 산업 공통의 안전기준 마련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채널의 변신, 소상공인 전용 ‘안방 장터’ 열린다
지역 소상공인과 농어민 상품을 케이블TV 채널로 송출하는 서비스도 규제 문턱을 넘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이 신청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지역채널 커머스 방송 서비스가 임시허가를 획득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통 실험이 본격화됐다.
해당 서비스는 정부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소비촉진 기간에 지역채널에서 권역 내 중소기업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구조다. 대형 온라인몰 진입이 어려운 업체에 콘텐츠 제작부터 결제, 정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가입 정보와 시청 이력 등 케이블TV가 보유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연령대별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며, 시청자는 화면 내 QR코드를 스캔해 즉시 결제할 수 있다.
그동안 방송법상 지역채널의 상품 판매 가능 여부가 불분명해 사업 추진에 제약이 따랐으나, 심의위원회는 실증 기간 중 확인된 340억 원 규모의 매출 창출 효과 등을 고려해 임시허가를 승인했다. 서비스는 하루 총 3시간 이내, 최대 3회 방송으로 제한하며 상품 선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래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씨는 지역 내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지역 경제의 실질적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9년 1월 규제샌드박스 도입 이후 이번 심의를 포함해 총 300건의 ICT 특례 승인을 이끌어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성장본부장 씨는 샌드박스가 신산업 지원과 민생경제 활력을 촉진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배달로봇의 시야를 확보하는 기술 실증과 지역 가게를 데이터로 묶는 커머스 실험은 규제 회색지대를 해소하며 자율주행과 지역 유통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