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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착시인가 구조적 회복인가… KDI 성장률 2.5% 상향 이면의 딜레마

반도체 호조가 중동 리스크 덮으며 경상 흑자 2,400억달러 전망… “경기 부양보다 지출 구조조정 시급”

반도체 착시인가 구조적 회복인가… KDI 성장률 2.5% 상향 이면의 딜레마 - 산업종합저널 전자
정규철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브리핑 영상 캡처)

13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재정경제부 청사(중앙동 416호)에서 열린 ‘2026년 상반기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제시했다. 정규철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반도체 수출 호황과 내수 회복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경기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2.5%라는 숫자는 겉으로만 보면 고무적이다. KDI가 추정하는 잠재성장률(1%대 중반)을 뚜렷이 웃돌 뿐 아니라, 올해 2월 제시했던 1.9% 전망치를 0.6%포인트나 끌어올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상향분의 절반을 훌쩍 넘는 부분을 반도체 단일 산업이 떠받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착시인지, 구조적 회복 신호인지’에 대한 논쟁도 함께 커지고 있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고물가 압력이 내수를 짓누르는 가운데, 거시정책의 무게 중심을 단기 부양에서 지출 구조조정으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반도체가 덮은 하방 리스크… 이례적 경상 흑자 전망
KDI는 이번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기존 1.9%에서 2.5%로 상향 조정하고, 내년 성장률은 1.7%로 제시했다. 정 부장은 “중동전쟁 영향과 대응 추경을 감안하면 전쟁 자체가 올해 성장률을 약 0.5%포인트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그럼에도 성장률 전망치를 0.6%포인트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수출 호조의 기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에서 2.5%로 높아진 상향분 가운데 절반을 넘어서는 부분이 반도체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인공지능(AI) 산업 팽창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출 물량과 가격이 동시에 뛰고 있는 점도 반도체 의존도를 키우는 요인이다. KDI는 반도체 수출이 물량 증가에 더해 가격 상승 효과까지 겹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약 2,400억달러, 내년은 2,100억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 과거 연간 1,000억달러 안팎이던 흑자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셈이다. 정 부장은 “경상수지 확대는 우리 경제의 소득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그 상당 부분을 미래에 대비하는 저축으로 돌리는 현상이 반영된 이례적 수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모든 부문이 고르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설비투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올해 3.3%, 내년 2.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건설투자는 공사비 상승과 중동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아 올해 0% 안팎, 내년에도 1% 남짓한 저성장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은 반도체 호조에 힘입어 올해 4.6%, 내년 2.2% 증가를 예상했다.

고물가 압력 가중… “통화정책, 금리 인상 옵션 열어둬야”
거시 지표 개선에도 체감 경기 회복 속도는 더디다. KDI는 올해 민간소비가 2.2%, 내년 1.5%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중동전쟁으로 석유류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소득 개선과 정부의 소비 지원 정책 등으로 소비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를 자극하면서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 내년은 2.2%로 제시돼 정부가 관리 목표로 삼는 2%를 웃도는 물가 수준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실물 경제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부담 요인이다. KDI는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을 2.5%, 내년 2.3%로 전망했다. 내수 회복이 수요 측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유가 상승이 공급 측 압력까지 더해지는 이중 구조다. 정 부장은 “근원물가는 전쟁 이전에도 2%를 소폭 상회하는 흐름을 보였고, 여기에 유가 급등이 겹치고 있다”며 “중동전쟁의 향방이 불확실한 만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고물가가 장기화될 신호가 누적된다면 금리를 평소보다 높은 수준에서 운용하거나 인상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5월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 금융통화위원회까지 고물가 지속에 대한 충분한 신호가 쌓일지는 알 수 없다”며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KDI는 이번 전망에서 우리 경제가 경기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규정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적 통화·재정 정책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단기 부양 대신 구조적 지출 효율화 정조준
재정정책과 관련해 KDI는 단기 경기 부양보다는 지출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은 “이미 추가경정예산안이 편성·집행된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확장 재정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며 “저출생·고령화 추세에 맞춰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적 개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기초연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지출 효율화의 핵심 과제로 지목했다. 기초연금은 현재 소득 하위 70% 고령층에 일괄 지급되고 있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노후 대비 여건이 나아진 집단이 늘어나는 만큼 동일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부장은 “소득 하위 70%라는 경직된 구조를 유지하다 보면 정작 도움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계층에는 충분히 지원이 가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저출생·고령화 현실을 반영해 지급 대상을 보다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대해서도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자동 배분하는 현행 구조는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재정이 한정된 상황에서 학생 수 감소를 고려해 교육재정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DI는 앞서 발간한 정책 보고서에서도 두 제도를 중심으로 한 의무지출 구조조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반도체 의존 심화… “지금이 구조개혁의 창”
전망내용을 보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한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가리는 양면성이다. 반도체 호황이 꺾일 경우 성장률과 경상수지가 동시에 빠르게 둔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 엔진이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는 여전히 위험 요소다. 정 부장도 “반도체 경기가 좋거나 내수가 개선되는 것은 경기순환 차원의 문제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국면이 올 수밖에 없다”며 “인구구조 변화와 생산성 둔화는 중장기 잠재성장률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인구구조 측면에서 출산율을 높이더라도 실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는 만큼, 향후 20년 안에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생산성 개선과 경제 구조개혁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KDI는 “경제 구조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고 지난 수십년간 미뤄온 과제지만, 지금처럼 반도체 호황과 경상수지 흑자가 제공하는 완충 장치가 있을 때 구조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면, 사이클이 꺾인 이후에는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률과 경상수지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는 지금이, 한국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드문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라는 의미다. KDI의 이번 전망은 단기 지표의 개선에 안주하기보다, 정책의 시선을 경기 부양에서 잠재성장률 제고와 지출 구조조정으로 돌려야 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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