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브리핑 영상 캡처 이미지)
5월 황금연휴를 맞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은 여행객으로 붐볐지만, 여행객이 결제한 항공권과 숙박 영수증에는 중동발 불안과 고환율의 청구서가 고스란히 찍혔다. 국제유가 상승이 유류할증료를 밀어 올리고 성수기 수요가 겹치면서 여행·숙박 서비스 물가가 크게 뛰었다. 가공식품 가격 오름세가 둔화하며 밥상 물가는 한숨을 돌렸지만, 대외 변수에 연동된 에너지와 서비스 요금이 전체 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히 드러났다.
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9.92로 2025년 5월 대비 3.1% 상승했다. 4월(2.6%)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오름폭이 0.5%포인트 확대됐다. 물가 상승의 진원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유류세 최고가격제가 유지되는 가운데서도 석유류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24.2% 급등해 전체 물가를 밀어올렸다. 한 달 전 상승률(21.9%)보다 더 가파른 오름세다.
유가와 성수기가 겹치며 폭등한 서비스 물가
유가 충격은 5월 연휴라는 계절적 수요와 맞물리며 서비스 물가로 빠르게 번졌다. 해외단체여행비는 전년 동월 대비 26.3%, 국제항공료는 25.9% 각각 치솟았다. 항공권 가격을 좌우하는 유류할증료가 국제유가와 연동돼 오른 데다, 연휴로 항공 수요까지 늘어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겹친 결과다.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물가도 여행·숙박을 중심으로 뚜렷한 오름세를 보였다.
지출 목적별로 보면 교통, 오락·문화, 음식·숙박, 의류·신발, 가정용품·가사서비스, 교육 등이 전월보다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항공료와 여행·숙박 관련 품목이 개인서비스 지수를 끌어올리며, 서비스 전체는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집세는 1.0%, 공공서비스는 1.8%, 개인서비스는 3.7% 상승해 체감 물가 압박을 키웠다.
완충된 밥상 물가, 신선식품의 ‘역할’
반대로 정부가 집중적으로 관리해 온 품목의 흐름은 일부 완충 역할을 했다. 출고가 인하와 할인 행사 영향으로 가공식품 상승 폭은 축소됐고, 농축수산물은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전년 동월 대비 2.2% 오르는 데 그쳤다. 신선식품지수는 전월 대비·전년 동월 대비 각각 1.4% 하락했다. 세부적으로는 신선어개가 5.7% 올랐지만, 신선채소(-4.9%)와 신선과실(-2.8%) 가격이 떨어지며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3.3% 올랐다. 이 가운데 식품은 2.1%, 식품 이외 품목은 4.2% 상승했다. 에너지와 서비스 요금이 생활물가를 자극하는 사이, 일부 식품·신선식품이 상승 폭을 덜어내는 ‘완충재’ 역할을 한 셈이다.
단기 가격 통제의 한계와 구조적 방어벽 과제
고환율 장기화는 수입물가를 자극하며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를 동시에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는 할당관세 적용과 유류세 최고가격제 시행 등으로 충격 완화에 나선 상태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브리핑에서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석유류 가격 상승 폭을 일정 부분 억제하고, 할당관세로 수입 농축산물 가격 오름세를 둔화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석유류 가격 상승 폭이 전월보다 확대됐고, 전년 수준과의 기저효과까지 겹쳤다”고 덧붙이며 정책의 한계도 인정했다.
단기적인 가격 통제 정책은 대외 변수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석유류처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국제유가·환율·성수기 수요가 겹칠 때마다 큰 폭의 가격 변동을 반복한다. 앞으로의 물가 흐름 역시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유가가 안정세를 찾더라도, 이미 오른 에너지가격이 외식·가공식품 등 다른 부문으로 얼마나 ‘전이’될지가 향후 물가 관리의 핵심 변수다.
물가 관리의 전선은 국내 농축산물 수급에서, 대외 변수에 연동된 에너지와 여행·서비스 부문으로 점점 이동하고 있다. 개별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는 미시적 접근만으로는 외부 충격을 막기 어렵다. 원유·곡물·수산물·항공 운송 등 핵심 수입 품목의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가격 급등 시 소비자 부담을 흡수할 수 있는 세제·보조·요금 체계 등 구조적 방어 장치를 서둘러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