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소득 안전망’이 아니라 영세기업 일자리를 줄이는 압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경고가 통계로 드러났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상당수는 내년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더 오르면 신규 채용을 접고 기존 인력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최저임금 논의의 무게 중심이 “얼마나 올릴 것인가”에서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로 이동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거세다.
임금 올리면 사람 줄이는 ‘역설’
중소기업중앙회가 24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중소기업 최저임금 관련 애로 실태 및 의견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소상공인 994개사 중 62.6%가 2027년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7.6%는 올해 최저임금 수준만으로도 경영에 부담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최저임금이 감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설 경우 대응 방안으로는 “고용을 줄이겠다”는 응답이 48.6%에 달했다. 신규 채용 축소, 기존 인력 감원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취약계층 소득을 지키기 위해 설계된 제도가 오히려 영세사업장 일자리 축소라는 역설을 낳는 딜레마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이재광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장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고물가·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4중고’ 속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며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의 안전망이 아니라 도리어 일자리를 줄이고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업종별 지불능력 무시한 ‘획일 임금’ 한계
영세 현장의 위기감은 단순한 숫자 문제를 넘어 제도 설계의 구조적 약점을 향한다. 지난 18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사업 종류별 구분 적용’ 안건이 부결되면서 업종별 지불 능력을 고려한 차등 적용 논의는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했다. 노동계 반대와 위원회 소극적 태도 속에서 취약 업종 부담만 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사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76.1%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같은 최저임금이라도 인건비 비중과 마진 구조가 다른 만큼, 편의점·도소매·서비스업·제조업 등 업종별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는 이재광 위원장을 비롯해 윤영발 자동판매기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금지선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 이기재 한국펫산업연합회 회장 등 업종 대표들이 참석해 현장 애로를 전했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서민 경제 전체가 무너진다”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최소한 숨을 쉴 수 있도록 내년도 최저임금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해 줄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사업 종류별 구분 적용을 둘러싼 논의는 노동계 반대와 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취약 업종의 생존과 회복을 위해 업종별 구분 적용이 반드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동결 요구로 바뀐 최저임금 논의의 질문
그동안 최저임금 논의는 “얼마나 올릴 것인가”라는 숫자 싸움에 갇혀 있었다. 중소기업계는 이제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선인가”가 심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결과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임금 인상이 영세 생태계의 고용 유지 능력을 초과할 때 최저임금 제도가 ‘보호막’에서 ‘진입장벽’으로 변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을 외면한 채 획일적인 인상률만을 밀어붙이면, 근로자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가 일자리 축소와 비정규직 확대라는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
“최저임금, ‘얼마’보다 ‘누가’가 중요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단순히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의견 개진을 넘어, 제도 설계 방향을 둘러싼 경고로 읽힌다. 중소기업계는 △경영여건과 지불 능력을 고려한 인상률 △업종별 구분 적용을 통한 취약 업종 보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보완대책(임금 보조·사회보험료 지원 등)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이 “서민 보호 장치”가 아니라 “영세 사업장 폐업을 앞당기는 촉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저임금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숫자만 바꾸는 심의로는 현장의 위기감과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얼마를 올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누가, 어떤 업종이, 어떤 여건에서 그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야말로, 제도를 지속 가능한 안전망으로 유지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 이날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던진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