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유통채널의 급성장이 국내 유통시장의 구조를 흔들고 있지만, 그 영향은 오프라인 전체에 일률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온라인이 오프라인 유통을 잠식하는 단순한 ‘제로섬’ 구도가 아니라 소비 자체를 키우는 가운데, 대형마트에는 직접적인 매출 압박을 주고 근거리 기반 소규모 유통업체에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시장 보호와 대형마트 규제를 중심으로 설계된 현행 유통정책도 온라인 60% 시대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공 연구위원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온라인 유통의 성장과 유통시장 정책 개선방향’ 보고서의 주요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온라인 지출이 늘어나면 오프라인 유통 전체 매출도 함께 증가하는 특징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대형마트는 온라인과 직접 경쟁 관계에 놓여 매출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규제·보호 중심의 유통정책을 시장 변화에 맞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유통채널은 가격 경쟁력, 폭넓은 상품 구색, 낮은 탐색비용, 고도화된 물류·배송 시스템을 앞세워 지난 10여 년간 빠르게 성장해 왔다.
2024년 기준 온라인 유통시장 규모는 약 97.74조원으로, 2018년 48.05조원의 두 배를 웃돈다. 같은 해 전체 유통시장 매출은 8.2% 증가했다. 이 가운데 오프라인은 2.0% 증가에 그친 반면 온라인은 15.0% 성장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온라인 유통 매출 비중은 2023년 전체 유통시장의 50%를 넘어섰고, 올해 3월에는 60%에 이르렀다.
이 연구위원은 “온라인이 100, 오프라인이 100일 때 온라인이 110으로 늘어나면 오프라인은 90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며 “실제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출이 동시에 증가하는 모습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은 신한카드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2020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읍·면·동 단위의 온라인 지출과 오프라인 매출 변화를 살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지역 주민의 1인당 온라인 지출이 늘어날수록 같은 지역 오프라인 업체의 매출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다만 업태별 차이는 뚜렷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지출이 늘어날수록 매출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온라인과 대형마트가 동일한 소비자 수요를 두고 직접 경쟁하고 있다는 의미다.
홈플러스가 최근 수년간 적자를 지속하다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사례도 단일 기업의 경영 실패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유통채널이 고객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할인점 등 다른 오프라인 업태가 식품군 품질과 사업 역량을 높이면서 대형마트의 핵심 경쟁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SSM, 편의점, 기타 전문유통업 등 근거리 기반 소규모 오프라인 업체는 온라인 지출 확대와 함께 매출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온라인 검색과 구매 편의성이 소비자의 잠재 수요를 자극해 전체 지출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100만 원을 쓰던 소비자가 온라인을 통해 사고 싶은 상품을 더 쉽게 찾고 구매하면서 110만 원, 120만 원으로 지출을 늘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까운 오프라인 업체에 대한 수요도 유지되고, 차별적인 상품을 개발하거나 접근성을 높인 소규모 유통업체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규모 오프라인 업체가 온라인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지역 특산물이나 즉석조리식품,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처럼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보고서는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쿠팡의 성장도 별도로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로켓배송 도입이 오프라인 업체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분석했지만, 매출 자체에는 큰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쿠팡이 오프라인 매출을 잠식했다기보다 다른 온라인 업체 매출을 가져가는 효과가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다만 쿠팡 도입 이후 소비자 1인당 결제 건수와 업체 1개당 소비자 수에서는 일부 변화가 관측됐다. 변화 폭은 1~2% 수준으로 크지 않았지만, 시장지배력 확대에 따른 유통 생태계 다양성 저해와 입점업체 갈등 가능성은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을 바탕으로 유통정책의 무게중심을 보호 중심에서 경쟁력 강화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동일한 소비자 수요를 두고 경쟁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대형마트 사이의 규제 형평성을 다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통시장 보호와 대형마트 규제를 전제로 만들어진 유통산업발전법이 온라인 60% 시대의 시장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오프라인 업체에 대해서도 단순 보호보다 자생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지역 특산물·즉석조리식품·커뮤니티 기반 서비스 등 온라인이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상품과 서비스를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채널 활용 역량을 높이는 지원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온라인 물류체계의 변화 역시 유통정책에 반영해야 할 변수로 꼽았다. 현재 분석에서는 로켓배송이 오프라인 업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물류 고도화와 C-커머스 성장세가 이어질 경우 시장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영업시간 제한, 새벽배송, 의무휴업일 등 기존 규제를 시장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 내부의 공정경쟁 환경도 과제로 남았다. 이 연구위원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은 시장 획정과 지위 판단부터 복잡해 적용이 쉽지 않은 만큼, 거래상지위 남용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입점업체와 플랫폼 사이의 교섭력 불균형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온라인 유통 생태계의 공정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취지다.
브리핑 말미에는 대형마트 새벽 영업·새벽배송 규제와 관련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대형마트에 부과된 각종 규제는 현 시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크다”며 “새벽배송과 의무휴업일 제도는 완화를 포함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로켓배송 효과에 대한 추가 질의에는 “오프라인 업체 매출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지만 결제 건수와 업체 1개당 소비자 수에 일부 변화가 있어, 쿠팡 도입 효과를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쿠팡 도입 시점을 변수로 삼지 못한 데이터 제약 등 분석의 한계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