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6월 제114차 총회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첫 국제협약(제193호,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을 채택한 뒤, 한국 노동계가 협약의 의미와 국내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열린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채택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는 양대 노총과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대표, 고용노동부 관계자, 국회의원이 참석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 방안을 논의했다.
“디지털 경제 확산, 플랫폼 노동 보호는 여전히 제자리”
토론회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국회의원 김주영·김태선·이용우·정혜경이 공동 주최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인사말에서 “세상은 굉장히 빨리 변하는데 제도는 굉장히 더디게 변하는 것 같다”며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도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법 체계는 아직까지도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류 사무총장은 ILO 협약 193호를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새로운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약이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제 노동 수행과 보수 지급 방식 등 사실관계에 따라 고용 지위를 판단하도록 하고, 결사의 자유·단체 교섭권·사회보험·최저임금·작업 중지권 보장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동화 시스템 사용에 대한 사전 고지와 중대한 결정에 대한 인간의 관여 보장 등 알고리즘 통제 장치가 포함된 점도 강조했다.
류 사무총장은 “플랫폼 노동을 기존 법 체계로만 규제할 수 없다는 데 전 세계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협약이 압도적으로 찬성으로 채택됐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고용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해 온 플랫폼 기업들은 더 이상 그 구조를 유지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짚었다. 그는 협약 채택에 찬성표를 던진 한국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 포괄 보호 체계를 마련하고, 협약 비준으로 보호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 밖 플랫폼 노동자, 근로기준법 안으로”
진보당 비정규직 노동자 국회의원 정혜경은 ILO 협약을 환영하면서도 국내 정책 결정과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ILO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사로 보면서 대단히 환영했고 반가웠다”며 “우리 노동부 장관께서도 직접 가서 찬성표를 던지셨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도급 노동자 관련 논의를 거론하며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보인 태도와 국내 정책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국에서 한 말과 국내에서 보인 행태가 상반됐다”며 정부의 협약 이행 의지를 물었다.
정 의원은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폭넓게 인정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제2조 개정도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그동안 법과 제도가 플랫폼 노동자들을 법 외로 만들어 놓았던 것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이라며 “이 땅에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 후반기 국회에서 그 역할을 해 내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플랫폼·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에 앞장설 것”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이태환은 플랫폼 노동 확산과 AI·디지털 산업 전환을 배경으로, 플랫폼 노동 보호 기준과 권리 보장 문제가 국내외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보호 기준과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국제적으로 대단히 큰 숙제였다”며, ILO 협약 마련으로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과제는 이 협약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한국에서 온전히 실현해서 법과 제도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역시 “플랫폼 그리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항상 앞장서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장 목소리·정부 입장 함께 듣는 자리”
발제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성근 노무사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우지연 변호사가 맡아 ILO 플랫폼 노동 협약의 의미와 국내 과제를 짚었다. 이어진 ‘특수고용·플랫폼 현장 노동자 토론’에서는 가사·돌봄유니온 최영미 위원장과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이창배 위원장이 플랫폼 현장에서의 현실을 전했다.
토론회는 발제와 현장 노동자 토론, 고용노동부 토론, 참가자 질의응답 순으로 구성됐다.
류기섭 사무총장은 “한국노총은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 보장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가겠다”고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노동계는 ILO 협약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보장 논의를 이어가며, 국회와 정부에 구체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