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실패를 단순한 폐업으로 끝내지 않고 책임 있는 마무리와 재도전의 과정으로 다뤄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창업기업의 탄생과 성장에 집중해 온 정책의 시야를 사업 종료 이후까지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마무리 정책 대안: 창업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제도적 과제와 정책 제언’ 포럼에서는 창업기업의 정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재정적 부담과 재창업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이 논의됐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공동대표는 창업정책이 기업의 설립과 성장 지원에 집중해 온 반면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은 창업자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폐업 신고 뒤에도 세무와 법인 해산·청산, 임직원 퇴직 처리, 계약 해지, 서비스 종료, 지식재산권 정리 등 복잡한 절차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공동대표는 사업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인재와 기술, 경험이 다음 도전으로 이어지는 구조까지 마련해야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이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병철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은 스타트업이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은 투자금만이 아니라고 짚었다. 창업자와 투자자, 임직원과 거래처 사이에 쌓인 신뢰와 평판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적절한 정리 시기를 놓치고 법적·제도적 절차를 미룰수록 이러한 ‘사회적 자산’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며 실패 이후에도 신뢰를 지키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조발제를 맡은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스타트업의 마무리를 창업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비용을 창업자와 투자자, 정부와 제도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 변호사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아산나눔재단이 법무법인 미션에 의뢰해 제작한 ‘스타트업 마무리 가이드북’을 소개하며 절차 안내를 넘어 제도 개선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한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뿐 아니라 시장에서 퇴장하는 기업이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책임 있게 정리하고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남대학교 경영학과 최화준 교수는 국내외 창업실패 연구 동향을 통해 재창업을 ‘창업-퇴장-재창업’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실패를 창업가 개인의 심리 문제로만 해석하기보다 실패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다음 창업에 활용하는 방안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재창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부채 상환 부담, 채무 불이행에 따른 금융거래 제한, 심리적 위축 등이 제시됐다. 조세 납부 유예와 재창업 자금 지원, 개인파산 제도의 정비 등은 실패한 창업자의 재기를 돕는 정책 수단으로 거론됐다.
조지윤 스트롱벤처스 이사는 성실하게 사업을 운영한 창업자가 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투자자가 모험자본의 원칙보다 채권자의 관점으로 계약상 권리를 행사하는 문제를 짚었다. 이러한 관행은 창업자뿐 아니라 기업의 회생이나 합리적인 정리를 지지하는 다른 투자자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리몬드 창업자인 윤홍조 전 대표는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보다 정리하는 과정이 더 어렵고 무거웠다고 돌아봤다. 그는 사업이 어려워진 순간부터 투자자와 임직원 보호, 계약과 채무, 세금 문제를 어떤 순서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이 대부분 창업자 개인에게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발표자들은 창업기업의 종료를 실패의 종착점으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는 데 주목했다. 사업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신뢰를 생태계에 남길 수 있어야 재도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창업을 권하는 정책만큼 실패 이후의 경로를 설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