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스스로 판단해 달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사고가 난 뒤 책임을 가리고 사람을 구조하는 체계는 여전히 ‘사람이 운전한다’는 전제에 머물러 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두고 사고 책임과 피해구제뿐 아니라 경찰과 소방의 현장 대응체계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국회에서는 10일 ‘자율주행 상용화 시대, 사고책임과 국민안전 체계는 준비됐나’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피해구제와 보험, 112·119 대응체계 정비를 중심으로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에 확산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공백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논의의 출발점은 지금의 교통사고 처리 체계다. 김영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지금까지의 교통법규와 사고 대응체계는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통제한다는 전제 아래 ‘사람의 과실’을 중심으로 설계됐다”고 말했다. 차량 스스로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주행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이 같은 전제만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책임의 주체부터 복잡해질 수 있다. 기존 교통사고에서는 운전자의 과실 여부가 사고 책임 판단의 중심에 놓이지만 자율주행 과정에서는 차량의 시스템 작동 여부와 제조사의 책임까지 함께 따져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김 위원장은 “기존의 운전자 책임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운전자와 자동차 제조사 등 관련 주체들의 책임을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고의 원인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통신 장애나 시스템 오작동을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야 할 새로운 위험으로 꼽았다. 사람의 운전 행위만 확인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고가 등장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와 대응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책임을 가리는 문제와 별개로 사고 직후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과제로 떠올랐다. 자율주행차 사고가 발생해도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기관은 경찰과 소방이다. 그러나 차량의 작동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기존 교통사고 대응 절차만으로 충분한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이날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34년 동안 경찰로 근무한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율주행 문제를 특정 기관의 업무로 나눠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 의원은 “자율주행차와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며 경찰과 소방의 대응책이 마련돼 있는지 물었다. 이어 “국민 안전을 놓고 소관을 따지고 있으면 되겠느냐”는 취지로 부처와 기관 간 칸막이를 경계했다.
임 의원이 주목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자율주행차는 자율주행차끼리만 달리는 별도의 도로가 아니라 일반 자동차와 보행자, 화물차 등이 함께 움직이는 현재의 도로에 들어온다. 기존 교통문화와 안전 수준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첨단 차량만 투입한다고 안전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임 의원은 “자율주행차가 저 혼자 도로를 다닌다고 안전이 확보되느냐”고 반문하며 음주운전과 졸음운전 문제를 함께 언급했다. 특히 자신의 지역구인 충북 증평·진천·음성의 물류 현장을 사례로 들며 화물 운전자들의 휴식 문제를 짚었다. 자율주행차가 도입돼도 기존 차량과 운전자의 위험 요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교통문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임 의원은 외국에서는 보행자가 지나가면 차가 멈추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차를 먼저 피해야 하는 현실이 남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차량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보행자 중심의 교통질서와 도로 안전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종갑 한국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가 ‘자율주행 시대 대비를 위한 운행관리와 책임체계 정비’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재영 경찰대학 경찰학과 교수요원은 ‘자율주행차 사고현장, 경찰·소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발표했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황현아 보험연구원 보험법제연구실장과 주병권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부장, 김용태 경찰청 교통안전과장, 이택희 소방청 구조과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고책임과 피해구제, 자동차보험, 경찰·소방 대응을 한 자리에서 논의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성패는 차량이 스스로 얼마나 잘 달리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한 순간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피해자를 어떤 체계로 보호할지, 경찰과 소방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함께 준비해야 비로소 도로 위의 기술이 된다.
김 위원장은 “자율주행 시대에는 운전자와 자동차 제조사 등 관련 주체들의 책임을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필요한 법과 제도 마련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줄어들 수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묻고 생명을 구하는 국가의 역할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자율주행 상용화를 앞둔 지금 기술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그래서 분명하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사고를 사람의 과실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로 언제까지 처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