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문서와 이미지, 코드의 세계를 바꿨다면 피지컬 AI는 이제 공장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다. 센서와 카메라가 현장을 읽고 AI가 판단하면 로봇과 설비가 움직인다. 제조업의 AI는 생산 현황을 화면에 띄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불량을 공정 안에서 잡고 설비 이상을 미리 감지하며 사람이 꺼리는 위험 작업까지 대신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문제는 ‘도입’과 ‘작동’ 사이의 거리다. 경기연구원이 스마트공장 기초 단계 이상 제조기업 200개사를 조사한 결과 디지털 전환을 적용한 기업은 77.5%였다. 반면 피지컬 AI를 실제 생산설비에 적용한 기업은 12.5%에 그쳤다. 생산 데이터를 AI 학습과 공정 최적화에 활용하는 기업은 1.5%뿐이었다. 디지털 전환의 기반은 넓어졌지만 데이터를 실제 생산 판단과 설비 제어로 이어가는 단계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뜻이다.
피지컬 AI의 본질은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에 있지 않다.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있다. 기존 설비와 충돌 없이 붙어야 하고 AI의 판단을 작업자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품질과 생산성, 안전이라는 결과로 투자 효과가 돌아와야 한다. 데모 영상에서 매끄럽게 움직이는 로봇보다 공장 안에서 멈추지 않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제조 현장의 경쟁력은 기술의 화려함보다 신뢰성과 지속성에서 갈린다.
기업들이 초기 투자비와 설비 교체 부담, 성과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중소 제조기업에 “AI를 도입하라”고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패했을 때 감당할 자금과 사람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지컬 AI 확산에 필요한 것은 장비를 더 많이 보급하는 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실패 비용을 줄이면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구조다.
산업단지 단위의 실증이 중요한 이유다. 수요기업은 실제 공정의 문제를 내놓고 기술기업은 현장에서 해법을 시험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새로운 기술을 다룰 수 있도록 기존 인력을 다시 교육해야 한다. 성공 사례만 쌓아서는 부족하다. 어떤 기술이 어떤 조건에서 효과를 냈는지, 현장 적용 과정에서 무엇이 걸림돌이 됐는지까지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뒤따르는 기업이 같은 시행착오와 비용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산업통상부가 M.AX 얼라이언스에 산업단지 AX 분과를 만들고 경기도가 시흥에 피지컬 AI 확산센터를 조성하는 것도 이런 흐름에 있다. 방향은 맞다. 다만 센터를 몇 곳 만들었는지, 장비를 몇 대 들였는지, 몇 개 기업이 사업에 참여했는지만으로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 공정에서 불량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설비 정지시간은 얼마나 단축됐는지,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얼마나 많은 기업이 얻었는지가 더 중요한 지표가 돼야 한다.
여기서 제조 AI 정책의 성패가 갈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수요기업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풀 기술기업을 붙여야 한다. 현장에서 성능과 경제성을 검증한 뒤 교육과 판로, 후속 확산까지 이어지는 길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을 한 번 보여주는 것과 산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피지컬 AI는 사람을 밀어내는 기술로만 볼 수도 없다. 조사 대상 기업의 79.0%가 운영인력 확보 방식으로 신규 채용보다 기존 인력의 재교육과 재배치를 선호했다. 이는 제조 AI 전환이 숙련을 없애는 과정이라기보다 사람의 경험을 새로운 기술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이 다시 그 사람의 판단을 보완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AI는 공장 안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피지컬 AI는 화려한 로봇 시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업자가 그 결과를 믿고 기업이 돈을 들일 이유를 확인할 때 비로소 기술이 공장에 들어온다. 이제 제조 AI 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몇 개 기업이 AI를 도입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공장에서 실제로 돌아가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제조 AI의 성적표는 전시장의 박수소리가 아니라 공장이 멈추지 않은 시간과 불량이 줄어든 숫자로 매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