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보상 과정에서 확인된 유해·위험요인을 개별 사업장의 작업환경 개선과 업종별 예방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제언이 국회에서 나왔다. 업무상 질병 판정에 주로 활용돼 온 역학조사와 보상자료를 유사 재해를 막는 예방정보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김주영·곽상언·김태선·박정·박해철·신정훈·안호영·이학영·이용우·최기상 국회의원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안전 일터를 위한 산재보상-예방 연계 강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이 행사를 주관했다.
조기홍 한국RMS안전전략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김대호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장과 김부욱 인제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가 발제했다.
토론에는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윤성준 영주농산물유통센터장, 신백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정책과장, 곽철홍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 고혁진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국장, 조덕연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보건실장, 박승현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이 참여했다.
김주영 의원은 “산재가 발생하면 보상하고 종결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보상과 예방, 재발방지 조치까지 이어지는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과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조사정보를 공유해 예방대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업무상 질병이 늘면서 역학조사와 전문조사 과정에서 축적되는 자료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조사자료를 보상에만 활용하고 끝내기에는 아깝다며, 예방과 연계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호영 의원은 역학조사에서 발견한 위험요인이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관계기관에 전달돼야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농산물 유통센터에서 확인된 유해요인이 다른 지역의 유사 작업장에도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조사정보를 공유해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 의원은 정보 공유를 실제 현장조치로 이어가려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담당 인력과 예산도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기상 의원은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사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기준으로 제도와 현장의 일이 이뤄져야 한다”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을 국회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역학조사로 찾은 위험, 현장 개선은 제한적
김대호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장은 역학조사 결과가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데 주로 활용돼 왔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직업환경연구원은 유해물질 노출 수준과 업무상 질병의 발병 기전을 연구하고 역학조사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장의 위험요인이 확인돼 관계기관에 전달되더라도 현장 개선으로 이어갈 정례적인 연계 절차와 후속조치 체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2017년 식각용 액화가스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흡입성 폐손상과 2018년 스테인리스 분말 세척 작업자의 급성 규폐 사례를 소개했다. 조사 과정에서 보호구 착용과 작업방법 개선, 결정형 유리규산 노출 관리 등의 필요성이 확인돼 관계기관에 통보됐지만, 2018년 사례는 당시 후속조치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2022년부터 재해예방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조사에서 보건상 문제가 발견된 사업장을 다시 방문해 작업환경을 살피고 개선방안을 자문하는 사업이다. 사업주 설득과 조치 이행 여부에 대한 사후 확인도 진행한다.
김 원장은 개별 사례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대하려면 예방기관과의 정보 공유와 후속조치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조사와 보상데이터 ‘두 트랙’ 활용
김부욱 인제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전문조사의 깊이와 보상데이터의 넓이를 함께 활용하는 산재보상-예방 연계 시범사업을 제안했다.
역학·전문조사에서 포착한 위험을 해당 사업장의 예방조치로 연결하는 ‘트랙 A’와 전체 산재 신청·판정자료를 분석해 업종·직종·공정별 예방과제를 찾는 ‘트랙 B’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트랙 A는 조사 과정에서 공정과 유해물질 노출, 관리수단의 작동 여부, 동료 노동자와 유사 사업장으로 위험이 확산될 가능성을 파악한 뒤 예방기관의 현장조치로 연결한다.
트랙 B는 산재 신청·판정자료를 정기적으로 분석해 같은 사업장이나 계열사, 공정에서 반복되는 질병 신호와 특정 업종·직종에 집중되는 질환을 찾는다. 공정 변경이나 혼합물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유해요인도 분석 대상에 포함한다.
김 교수는 직업환경연구원의 2023년 전문조사 회신이 451건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2024년 업무상 질병 신청은 뇌심혈관계 질병과 소음성 난청을 제외하고 2만5180건에 달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건수도 2만건을 웃돌았다. 다만 각 수치는 집계 대상과 범위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전문조사에서 확보한 정밀한 현장정보로 개별 사업장을 개선하고, 대규모 보상자료에서 반복되는 위험신호를 찾아 업종별 예방사업과 연구과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호 선별, 안전보건공단은 현장 개선
김 교수는 기관별 역할을 구분하되 조사정보가 기관 사이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이 전문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예방신호와 연계 필요도를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전달하면, 안전보건공단이 현장 위험을 확인해 공학적·관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지역 예방사업에 배정하는 구조다.
역학조사의 범위를 새로 넓히거나 예방기관이 동일한 조사를 반복하기보다 이미 확인된 위험정보를 활용해 현장 대응의 속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전문조사에서 확인한 예방 필요도를 P0∼P3 네 단계로 예비 분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현장지원 필요가 낮은 사례부터 가이드·상담 등 자체개선 지원이 가능한 경우, 외부 지원이 필요한 사업장, 급성·집단 노출처럼 신속한 확인이 요구되는 사례까지 구분해 대응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이 등급이 위험성평가 결과나 산재 승인,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예방기관의 대응 순서를 정하기 위한 잠정적 분류이며, 현장 지원 수준은 안전보건공단이 사업장을 확인한 뒤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방 연계 약 2%”…법적 기반 마련 제안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은 역학조사에서 작업환경 문제가 확인돼도 예방조치로 연결할 제도적 경로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 PL은 재해예방지원사업이 2022년부터 2026년 진행분까지 누적 약 50건이며, 연평균 연계 건수는 약 10건이라고 설명했다. 양대 역학조사기관의 연간 접수 건수를 약 600건으로 보고 예방 연계 비율을 약 2%로 추산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판정과 역학조사를 수행하고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예방사업을 담당하는 현행 분업체계는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사업장 위험정보의 공유와 후속조치를 뒷받침할 제도적 근거가 부족해 기관 사이에서 정보가 끊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주영·곽상언·김태선·박정·박해철·신정훈·안호영·이학영·이용우·최기상 국회의원 등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안전 일터를 위한 산재보상-예방 연계 강화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구 PL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해 역학조사에서 확인된 위험신호를 예방조치로 연결할 근거와 작업환경 개선 지원사업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해·위험요인이 확인된 사업장을 예방조치 우선지원 대상으로 명시하고, 기존 예방사업의 운영지침과 고시를 정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상과 예방 사이 정보 단절 막아야
토론회에서는 산재보상 과정에서 축적된 조사정보를 개인의 업무상 질병 판정에만 활용하지 않고 유사 사업장과 업종의 재해를 줄이는 데 써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전문조사에서 확인된 위험신호의 기관 간 전달 절차와 보상자료 정기 분석체계를 마련해 현장 지원과 업종별 예방사업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