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전기차 충전 생태계가 테슬라의 독자 충전규격인 NACS(North American Cha rging Standard)로 쏠리고 있다. 켄터키 주를 시작으로 NACS를 의무 도입하는 미국 주정부가 속속 등장하는 추세고, 포드‧GM‧벤츠 등 완성차 업체도 NACS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NACS가 미국 시장을 점령하면 국제 표준까지 주도할 가능성이 생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HIF 월간 산업 이슈, 7월’ 보고서(이하 하나금융 보고서)는 ‘분할됐던 충전 방식이 하나로 수렴하면서 북미 전기차 전환이 가속되고, 테슬라 생태계 종속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NACS, 어떻게 북미 점령했나
전기차 충전기 규격은 국가와 충전 조건에 따라 다양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표준으로 인정받는 것은 CCS1이다. 테슬라를 제외한 GM, 포드, 현대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이를 적용했다. 테슬라는 CCS1과 별도로 독점 충전 커넥터(NACS)를 개발해 세계 각지에 자체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과거에는 테슬라 차량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올해 2월부터 경쟁사 전기차도 사용할 수 있도록 어댑터를 설치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전기차 충전소 보조금을 받기 위함도 있지만, 자사 규격 사용을 보편화 할 의도도 드러난다.
KB증권의 ‘북미 전기차 충전 시장 현황’ 보고서(이하 KB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테슬라의 ‘슈퍼차저’는 이미 북미 전기차 충전소 점유율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더군다나 지난달 포드와 GM이 기존 DC콤보 대신 테슬라 규격인 NACS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하며 NACS가 북미 표준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NACS와 CCS1의 크기 비교. 작은 것이 NACS / 출처 테슬라
주요 완성차 업체와 충전 네트워크 사업자, 충전기 제조업체들이 NACS 전환에 합류하는 것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다. NACS는 케이블과 충전구가 작고 가볍다. 제조업체는 NACS를 채택하면 차량 내부 부품 비용 절감, 공간 활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미 있는 충전소를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충전 인프라 설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표준 장악하려는 테슬라…머스크 숨은 의도 ‘데이터 확보’
테슬라가 충전 표준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데이터 확보’다. KB증권 보고서는 ‘충전 규격과 데이터를 확보하며 테슬라가 추가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나금융 보고서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테슬라의 데이터 접근성이 개선돼 인프라 연계서비스 개발에서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NACS 충전기 구멍 5개 중 2개는 데이터 수집용이다. 테슬라는 차종별 배터리 상태, 충전 속도 등의 정보를 슈퍼차저를 통해 수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슈퍼차저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테슬라 앱을 설치해야 한다. 고객의 주행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수집한 데이터로는 배터리 생애주기 서비스 등 다양한 연계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 KB증권 보고서는 ‘단기적으로는 포드, GM의 판매량이 증가해 테슬라의 점유율을 위협하겠지만, 2032년에 이르면 테슬라가 협력사 차량으로부터 충전 매출 50억 달러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GM‧포드도 데이터 대책을 세울 것이고, 테슬라가 타사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보가 넘어가는 것 자체 만으로도 테슬라가 우위에 서는 건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당장 NACS가 국제 표준이 될 것으로 속단하긴 이르다고도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전기차 충전소 보조금 대상에 테슬라를 포함했을 뿐, 명확하게 힘을 실어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포드와 GM의 합류로 무게추가 기울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대차까지 따라가면 힘을 보태는 모양새가 돼 신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만일 NACS가 국제 표준이 된다면 한국만 CCS1을 사용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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