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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톺아보기] 폭염 속 건설현장, ‘쉴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노동의 기록

녹아내린 건 조끼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내가 그 조끼를 처음 본 건,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회색 작업복 위에 벗어지듯 걸친 파란색 냉방조끼. 비싼 거라며, 딱 30분만 시원하다고, 그마저도 금방 물이 흘러내려 짜증나서 벗어버렸다고 중얼거리던 그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 다시 입었다. 벗을 수 없는 유니폼처럼.

여름이면 사람들은 바다로 향하지만, 아버지는 콘크리트 위로 향했다. 구두가 아니라 안전장화, 셔츠 대신 앞치마. 지하철은커녕 그늘도 없었다. 콘크리트가 부어질 자리는 구름이 비켜가는 곳이어야 했고, 그 자리에선 ‘사람’이 아니라 ‘작업물량’이 존재했다. 온도계는 35도를 넘었지만,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레미콘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설 자리는 없지”라는 말에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산업 톺아보기] 폭염 속 건설현장, ‘쉴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노동의 기록 - 산업종합저널 동향

점심은 도시락. 뚜껑을 열기 무섭게 증기가 올라오고, 땀은 밥보다 먼저 흘러내렸다. 쉴 수 없다는 건 단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쉬면, 옆 사람이 죽어난다는 걸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안 하면 저 사람이 해야 하잖아.” 이 말도 사실이었다. 폭염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구조가 문제였다.

그날도 똑같은 날이었다. 정오의 열기는 아스팔트 위에서 튀어 오르고, 수화열이 발끝부터 목덜미까지 끓여댔다. 사람 얼굴은 모두 땀으로 번들거렸고, 장화 안은 물웅덩이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헉, 하고 무릎을 꿇었다. “좀 어지럽네.”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일상처럼 보이는 기절이었고, 누구나 다 아팠다. 다만 쓰러질 틈이 없을 뿐.

우리는 겨우 그늘 하나 없는 작업장에서 아버지를 눕혔다. 누군가는 말렸다. “레미콘 기다린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냥 외쳤다. “사람부터 살려야죠.” 그 순간, 누군가가 생수를 건넸고, 다른 이는 그늘을 만들려고 커다란 현장용 천막을 펼쳤다. 그렇게 모두가 잠시 멈췄다. 첫 10분이었다. 그 현장에서 누군가 ‘쉼’이라는 것을 이야기한 건.

그 날 이후, 나는 법을 읽었다. 정부 자료를 봤다. “33도 이상이면 2시간마다 20분 쉬라고요? 현장 와보세요. 그 말이 얼마나 종이 위 말장난인지.” 아버지는 웃었다. 그냥, 허탈한 웃음이었다. 조끼는 그날 이후 다시 입지 않았다. 이미 다 녹아버렸다고 했다.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조끼가 아니라, 사람이 녹고 있었던 거지.”

요즘도 나는 아버지를 배웅한다. 한여름, 동이 트기도 전의 새벽. 작업복을 입는 그의 손이 매일 조금씩 더 느려진다. 그래도 그는 말한다.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다른 사람은 좀 쉴 수 있을 거 아냐.” 그 말에 나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물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단순히 법을 지키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법은 콘크리트를 모른다. 수화열을 모른다. 사람의 땀 냄새를 모른다. 작업복 속에 숨겨진 사람의 체온을 모른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언제쯤 그 말이 현장에서 들릴 수 있을까. 그 조끼가 녹기 전에, 사람부터 쉬게 해줄 수는 없는 걸까.

<위 내용은 지난 23일 '더우면 쉴 권리 폭염 속 온열질환 예방 국회토론회' 자료에서 나온 현장노동자의 증언을 콘텐츠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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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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