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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미국은 CHIPS법, 한국은 아직 계류 중

첨단산업·벤처·기업 환경 법안 30건 계류… 국회 무관심 속 ‘기회비용’만 커진다

반도체, 인공지능, 소형모듈원자로, 벤처투자. 국가 경쟁력을 떠받칠 새로운 기둥들은 이미 제자리를 찾았다. 문제는 이를 떠받쳐 줄 제도라는 기초가 여전히 허물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정기국회를 맞아 국회에 건의한 30개 입법과제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며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에 사활을 거는 시점에, 한국만이 내부 절차에 발이 묶여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국회에는 현재 9개의 반도체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대통령 직속 반도체특별위원회 설치, 인프라 신속 구축, R&D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적용 예외 등 여야가 공통으로 발의한 법안들이다. 하지만 발의 이후 1년이 넘도록 실질적인 진척은 없다. 미국이 반도체법(CHIPS Act) 시행으로 자국 기업에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쏟아붓고,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위한 국영 펀드를 재차 조성하는 사이,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법안 심사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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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특별법안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세제 지원, 전력과 용수 인프라 확충, 인력 육성 계획 등 타국에서는 이미 정책화된 사안들이다. 특히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로 수도권은 RE100 실현이 어렵고, 반대로 서남권과 제주도는 전력잉여가 발생하는 구조다. 산업 수요와 지역 자원이 엇갈리는 현장을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국가균형발전은 말뿐인 공허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다. 대한상의는 금산분리 완화를 포함한 금융규제 유연화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지주회사 체제 아래에서는 자산운용사 인수가 불가능하고, 비지주 체제에서는 사모펀드가 계열사에 지분 투자를 할 수 없다. 이는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략펀드 조성 자체를 가로막는다. 이미 미국 인텔이 자산운용사와 합작해 반도체 팹을 건설 중인 상황에서, 한국의 금산분리는 기술 산업과 금융을 서로 다른 세계에 가둬놓고 있는 셈이다.

투자 생태계 역시 경직돼 있다. 벤처투자 규모는 2021년 15.9조원에서 2024년 11.9조원으로 감소했다. 기술 기반 창업 수 역시 줄고 있다. 30년 존속기간이 끝나가는 정책 모태펀드의 법적 기한을 삭제하고, 고배당 기업에 대한 분리과세를 통해 자본시장으로의 유입을 유도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자금이 말라붙는 시장에 성장과 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 리스크는 또 다른 족쇄다. 현행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고소만으로 수사가 시작되며,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 가중처벌 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을 말하면서도 모험적 의사결정이 법정에 서는 현실은, 기업가의 두 손을 묶는 것과 다름없다. ‘경영판단원칙’을 법에 명시해,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은 결코 과하지 않다.

상속세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대한상의는 대기업에도 납부 유예를 허용하고, 상속세와 자본이득세를 이원화하는 방식 등 대안을 제시했다. 세율은 유지하되, 일시 집중을 피할 수 있는 구조적 개선책이다. 기업 한 곳이 사라지면, 함께 일하던 노동자 수백 명의 삶이 휘청인다. 세금은 국가를 위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삶이 무너져선 안 된다.

이번 대한상의의 건의안은 단순한 청원 목록이 아니다. 이미 여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입법 과제가 14개에 달한다. 당론을 넘어 실현 가능한 공통 과제임에도 정쟁과 미루기의 정치는 또 한 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국회는 ‘심사 중’이라는 관료적 회피 뒤에 숨어 있을 여유가 없다. 문제는 지금 산업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허은철 기자 기자 프로필
허은철 기자
echheo@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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