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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톺아보기] 숨은 공장 속 잊힌 사람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들'

'기업 활력' 외침 뒤 근로자의 독백… "나는 숫자에서조차 탈락했다"

※ 본 기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기업 경영실적 전망 및 애로요인 조사' 통계와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제조업 실적 전망 '빨간불''이라는 통계 이면에 가려진 현장 근로자의 시선을 통해 ‘사라지는 일자리와 잊힌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각색했으며, 기사에 언급된 수치(제조업체 75% 목표 미달 등)는 검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돼 기사 신뢰성을 확보했습니다.

모든 기계가 멈췄다. 열이 식은 주조틀 위에 먼지만 앉는다. 낡은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노래가 나오고 있지만, 그마저도 허공을 울릴 뿐이다. 오랜 시간 흘린 땀으로 닦아낸 바닥, 수십 번 반복했던 버튼 조작, 용광로에서 튀어나오던 불빛. 이제는 모두 정지된 풍경이다.
[산업톺아보기] 숨은 공장 속 잊힌 사람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들' - 산업종합저널 동향

나는 25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했다. 한때는 매일같이 비명처럼 쏟아지던 쇳물 소리에 귀가 멍해졌고, 손바닥 가득 박힌 굳은살이 자랑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쇳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원자재 값이 올랐다고 했다. 그다음엔 주문이 줄었다고 했고, 마지막엔 세금이 버겁다며 인력 감축을 논의했다. 나는 끝까지 남았지만, 결국 그날이 왔다. "사장님도 어쩔 수 없대"라는 말로 시작된 정리해고 통보였다.

공장은 곧 창고로 바뀔 것이다. 기계는 해외로 팔려 나간다 했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내게도 목표가 있다. 아이들 대학 졸업시키고, 아내에게 새 보일러 하나 놔주는 것. 그런 평범한 목표조차 이룰 수 없는 세상이 된 걸까.

뉴스에서는 제조업의 위기라 한다.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수출은 멈칫하고, 법인세가 걱정이라 했다. 하지만 기사 어디에도 나 같은 사람 이야기는 없다. 대기업 회장이 “성장지원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공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우리 집 전등은 여전히 켜지고, 냉장고는 돌아가고,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단지 그걸 만드는 사람이 자꾸만 사라질 뿐이다. 제품은 팔리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잊힌다. 어느 날 뉴스를 보다가, ‘올해 제조업체 75%가 영업이익 목표에 미달할 것’이라는 제목을 봤다. 갑자기 마음이 묘했다. 그 75%에 내가 있었던 것 같아서였다. 아니, 나는 이제 그 수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일터를 잃었으니 숫자에서조차 탈락한 셈이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 공장 근처를 돈다. 먼지 묻은 담벼락에 손을 얹어보기도 하고,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는다. 가끔은 문득 문이 열릴 것 같아 그 앞에 멈춰 서기도 한다. 허무하게도, 그 문은 이미 녹슬어 잠겨 있다.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는 걸, 겨우겨우 실감한다.

국가가 경기 침체를 말할 때, 그건 단순한 숫자 하락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가족의 저녁 식사가 줄어드는 일이고, 아이의 학원비가 밀리는 일이며, 중년 가장이 새벽에 몰래 눈물 흘리는 일이다. ‘기업 활력’이라는 말 속에,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텅 빈 도시, 폐쇄된 공장, 조용한 거리만이 남는다.

혹시 알고 있나. 공장이 멈춘 다음에야 비로소, 도시가 얼마나 조용한지.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기억한다. 나는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의 한 기둥이었다. 지금은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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