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이 초고령사회 분기점에 섰다. 1947~1949년생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 이상으로 진입하며, 2040년에는 고령화율 35%(내각부 전망)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이 단순 복지 대상에서 사회 중심축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새로운 산업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에 '제2의 한류 시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령층을 위한 ‘산업 설계’에 나선 일본 정부
일본 정부는 초고령화에 대응해 복지 인프라 확대, 고령자 전용 서비스 산업 육성, 고령층 고용 확대 등을 3대 축으로 법제도를 정비 중이다. 핵심은 의료·간병·생활지원을 통합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구축이다. 이 시스템은 공공 서비스에 민간 간병, 디지털 건강관리 솔루션 등을 결합한 융합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하고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대했다. 정년 연장, 재고용 등이 확산되며 고령층이 '생산의 주체'로 재편되고 있으며, 산업계도 고령자 중심의 소비·생산 시스템을 준비하는 흐름이다.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른 ‘액티브 시니어’
고령층이 경제 활력층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자산 규모다. 일본 내 65세 이상 가구는 전체 금융자산의 64%를 보유 중이며, 평균 저축액은 한화 2억 2천만 원 수준이다. 내각부 설문에서도 65세 이상 응답자의 65.9%가 "생활 형편에 걱정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식료품, 의료비 등 필수재 중심의 생존형 소비(2016년 70% 이상)에서 벗어나, 건강, 여가, 자기계발 등 '삶의 질'을 위한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2023년 의료비 비중 25.8%로 감소).
최근에는 디지털 친화성과 사회적 참여 욕구를 가진 '액티브 시니어'가 부상하며, 이들을 위한 건강관리 솔루션, 디지털 연동 콘텐츠,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 ‘경험·참여형’ 진출 전략 요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3일 발표한 보고서('일본 시니어 시프트 대전환, 우리 기업의 새로운 기회')는 일본 시니어 시장이 단순 복지 소비를 넘어 ‘경험·참여·서비스 융합형 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도 단순 제품 수출이 아닌, 감성적 서비스와 경험 기반 브랜드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고급화·맞춤형 헬스케어, 여행·문화·커뮤니티 중심의 체험형 콘텐츠, 디지털 기반의 합리적 소비 마케팅 및 장기고객화 전략 등을 주요 진출 방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일본 내 K-콘텐츠 인지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세대 간 소통을 촉진할 정서적 콘텐츠와 고령 친화적인 사용자환경(UI) 결합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용민 KOTRA 일본지역본부장은 “일본 시니어 시장은 건강, 소통, 디지털을 축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우리 기업이 이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차별화된 진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며 “이 보고서가 한국 기업의 전략 수립에 실질적인 가이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새로운 고령화 모델이 만드는 산업지도
일본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고령화 실험장이 되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인구 변화가 아니라, ‘복지-노동-소비’ 전반의 구조 재편을 의미한다. 한국 역시 비슷한 인구구조를 향해 가는 만큼, 일본 시니어 산업은 미래 한국의 산업 방향을 예견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일본의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시장이자 산업 전환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그 안에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수출 실적을 넘어 향후 고령사회 대응력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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