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세미나’는 그 복잡하고도 민감한 의제를 둘러싼 현장의 온도를 생생히 보여줬다. 정년 65세 연장을 놓고 정부의 정책 방향과 학계, 노무 현장의 전문가들이 쏟아낸 진단은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하나의 관점에 갇혀 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60세 정년이 법제화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실제 정년까지 근무하는 이들은 17.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년만 65세로 늘리는 것은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양극화”라고 우려했다. 82.7%의 다수 근로자가 그 정년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장 논의가 오히려 불균형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제시된 통계에 따르면, 정년이 연장될 경우 이들이 받게 될 연간 임금은 1억 원을 넘는 반면, 국민연금 공백기로 인한 손실은 연간 2,400만 원 수준이다. 즉, 국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지며 정년을 늘려도 그 혜택이 편중될 가능성이 크고, 그 비용을 미래세대가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청년 고용과 비정규직 고령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단선적 처방’이 될 수 있다며, 정년 연장보다 고용 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 고려대 교수 역시 정년 제도 자체가 인구 구조 변화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용’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중심의 보호 체계로 나아가야 하며, 고용과 상관없이 생계와 복지를 보장하는 안전망이 핵심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일방적인 구조 분석에 치우쳐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현장에선 실제로 65세를 넘어서도 신체와 인지 기능이 충분히 유지되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은 단지 나이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건강 기대수명이 대폭 늘어나며, ‘일할 수 있음에도 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오히려 문제라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된다.
또한 청년 일자리와 고령자 일자리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보는 시각 자체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질문도 남는다. 고령 노동자들이 주로 분포한 직무와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무는 산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점차 분화되고 있다. 더욱이 인구구조 급변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노동 수요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파이 나눠먹기’식 논리는 오늘날의 노동시장 변화를 포착하기에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반복 노동이나 단순 관리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력 자체의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인간 고유의 경험과 판단이 필요한 분야에서 숙련 고령 인력의 수요는 오히려 유지되거나 증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순히 정년이라는 연령 기준으로 노동을 규정하는 것이 점점 현실과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의 전문가들은 이처럼 정년 연장을 단독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안전망의 강화, 임금체계 개편, 기업의 유연한 인력운용 모델 정립 등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법제 변화가 노사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정년 연장 논의는 결국 하나의 해법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그 방향 안에서 어떤 철학을 중심에 둘 것인가, 노동을 보는 시각과 사회가 책임지는 삶의 설계가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남는다. 고령자의 노동을 비용으로만 볼 것인가, 자산으로 다시 설계할 것인가. 그 물음 앞에서, 정년이라는 제도는 이제 근본부터 다시 묻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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