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손끝에 닿는 스마트 촉각 디스플레이 '닷패드'가 시연됐다. 모바일 카메라로 파킨슨병 환자의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인공지능(AI) 솔루션 '메디스텝'도 모습을 드러냈다.
20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 마련된 체험존의 풍경이다. 첨단 기술이 사회적 약자의 일상을 어떻게 재설계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기술 발전이 불러올 소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AI를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지자체 및 플랫폼과 결합하는 구조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가 20일 '2026 ERT 멤버스데이'를 진행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단방향 기부에서 다자간 협력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정효명 삼성전자 부사장을 비롯한 500여 명의 참석자가 모였다. 김은정 에스케이(SK) 부사장, 제임스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도 자리했다. 참석자들은 지역 소멸과 기술 격차라는 복합 난제를 풀기 위한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행정안전부는 '지역상생발전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상시적인 민관 협력 플랫폼을 가동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힌 지역 문제를 기업의 실행력과 결합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기업과 실행 자원을 원하는 국민을 연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문제 해결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지역 자본과 플랫폼의 결합
개별 기업의 실천 사례 역시 단순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를 공동 기획자로 격상시키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엘지(LG)헬로비전은 행정안전부 공모전 참여와 영덕 마라톤 지원을 마쳤다. 올해는 완도군과 체류형 관광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 소멸 위기 극복에 나선다. 한국맥도날드는 창녕 마늘, 진도 대파를 활용한 메뉴를 개발했다. 지역사회를 식재료 공급처가 아닌 파트너로 편입하는 협업 모델을 구축했다.
데이터 기반의 협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은 3,500여 개 공익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기업의 참여가 투명한 데이터로 증명되는 구조를 설계했다.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지난 10년간 468개 사회적 기업과 협력했다. 축적한 사회성과 측정 노하우를 영리기업에 적용하며 사회적 가치를 정량화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현대백화점은 소비자가 일상에서 참여할 수 있는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기술과 공존하는 신기업가정신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기업가 정신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진단한다.
최문정 카이스트(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과거에는 ESG 기준을 준수하는 기업이 세상을 바꿨다”고 분석하며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좋은 기업’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기업은 AI가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예방해야 한다”며 “AI를 난제 해결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신기업가정신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행사장 내 마련된 '워케이션 전시존'과 '돕는 AI 체험존'은 최문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가 강조한 철학이 구현된 현장이다. 에이치디(HD)현대, 대상, 에스케이(SK)가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의 워케이션 운영 사례가 소개됐다. 부산, 순천을 비롯한 지자체의 지원 정책도 나란히 전시됐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인공지능 피트니스 게임 '휠리엑스'가 눈길을 끌었다. 지도 기반 증강현실(AR) 콘텐츠 '로컬유니버스' 결합 솔루션도 등장했다. 기술이 어떻게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지 증명하는 사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제는 한 기업이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복잡하고 구조화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기업·정부·지자체·비영리·사회적 기업·소비자까지 각자의 역량과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연결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I가 능력의 격차를 줄이고 사회성과 측정을 가능하게 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앞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거두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