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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톺아보기] "김 부장이 배달통을 메기까지"… 통계가 증명한 ‘중년의 추락’

54세, 그 쓸쓸한 ‘조기 종영’에 대하여 "숫자만 늘리면 뭐하나"

[산업 톺아보기] "김 부장이 배달통을 메기까지"… 통계가 증명한 ‘중년의 추락’ - 산업종합저널 FA
자료사진 = 본지 기획 / AI 생성

사원증을 반납하는 소리는 건조했다. ‘탁’. 그 짧은 마찰음 하나가 30년 근속의 마침표였다. 책상을 정리하는 그의 등 뒤로 사무실의 소음은 여전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는데, 그의 시간만 뚝 끊겼다. 만 54세. 아직 머리카락은 검고 다리는 튼튼한데, 회사는 그를 ‘과거’라 불렀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는 차가운 부검 결과와 같았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평균 나이, 54세. 법전에 적힌 ‘정년 60세’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 도달할 수 있는 신기루였다.

지금 여의도와 광화문에서는 ‘정년 연장’을 두고 뜨거운 설전이 오간다. 60세를 65세로 늘려야 인구 절벽을 막는다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논쟁은 정작 현장의 침묵을 담아내지 못한다. 결승선(정년)을 뒤로 미루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대다수의 주자들은 그 결승선이 보이기도 전에, 54세라는 지점에서 트랙 밖으로 떠밀려 나는데.

통계는 그들의 퇴장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3명 중 1명은 타의에 의해 등 떠밀렸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그렇게 성벽 밖으로 내쳐진 이들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어제까지 ‘김 부장’, ‘이 상무’로 불리며 결재 서류를 검토하던 눈은, 오늘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감시하거나 배달 앱의 경로를 쫓는다. 보고서는 이를 ‘직무의 하향 이동’이라 점잖게 서술했지만,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존엄의 추락’이다. 평생을 갈고닦은 숙련과 경험이 ‘단순 노무’라는 거대한 믹서기 속에서 흔적도 없이 갈려 나간다. 사회적 낭비이자, 개인의 비극이다.

[산업 톺아보기] "김 부장이 배달통을 메기까지"… 통계가 증명한 ‘중년의 추락’ - 산업종합저널 FA
자료사진 = 본지 기획 / AI 생성

54세에 시작되는 제2막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안락한 노후가 아니라, 저임금과 고용 불안이 도사리는 정글이다. 그런데도 제도는 무심하다. “더 오래 일하게 해주겠다”며 정년 숫자놀음에만 매몰된 사이, 정작 50대 가장들은 고용의 절벽 끝에서 맨몸으로 버티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년이라는 숫자를 늘리는 ‘연장의 마법’이 아니다. 트랙 중간에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재기의 사다리’다. 쫓겨나듯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경험을 다른 형태로 변주할 수 있도록 돕는 ‘전환의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는 아직, 일하고 싶었다. 아니, 일해야만 했다. 54세는 뒷방으로 물러나 낡은 앨범이나 뒤적일 나이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함부로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쓸쓸하게 돌아선 그들의 뒷모습이 묻고 있다.
※ 이 기사는 국회미래연구원이 21일 발간한 '생애 주된 일자리 퇴직의 현실과 정책 과제' 보고서의 주요 분석 내용을 토대로, 본지의 시각을 담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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