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중동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전례 없는 공급 위기에 직면했다. 국제금융센터(KCIF)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을 종합하면 유가 급등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점을 넘어섰다. 지난 19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18.65달러까지 치솟았으며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도 한 달 새 30% 이상 뛰며 실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기획: 박재영 기자 / AI 시각화: 산업종합저널
골드만삭스와 IEA는 중동 충격을 세계 석유 시장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급 쇼크로 규정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 유조선과 파이프라인 우회 물량을 합산한 공급 차질 규모는 하루 약 1,720만 배럴로 추산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서 증발한 셈이다.
유가 급등 여파는 세 가지 지표로 집계된다. 브렌트유와 WTI가 모두 100달러 선을 재시험 중이며 호르무즈 리스크를 직격으로 받는 두바이유는 한때 160달러를 넘는 역대급 가격 차이를 보였다. 휘발유와 경유를 포함한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 상승 폭을 상회하며 소비자 체감 물가 압력을 키우는 양상이다.
미국 전략비축유 1.7억 배럴 방출… ‘교환 방식’으로 장기 재고 확충 노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IEA 회원국과 공조해 비축유 4억 배럴 방출에 합의했으며 미국 몫인 전략비축유(SPR) 1억 7,200만 배럴을 향후 4개월간 순차 공급할 계획이다.
특징적인 대목은 단순 매각이 아닌 ‘교환(exchange)’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원유를 민간에 빌려주고 향후 프리미엄을 얹어 현물로 돌려받는 구조다. 시장이 근월물 가격이 원월물보다 비싼 백워데이션 상태인 점을 고려해 민간 참여를 유도하려는 복안이다. 미국은 원유를 대여해주는 대가로 2028년까지 2억 배럴을 회수해 장기적인 재고 확충 효과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정책적 한계는 뚜렷하다. IEA 전체 방출량은 하루 약 300만 배럴 수준으로 호르무즈 차질 규모인 하루 1,720만 배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SPR 재고가 2022년 방출 이후 과거의 60%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여서 추가 방출 속도와 향후 재충전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러시아·이란 제재 완화 및 각국 보조금 투입… “실물 공급 해소가 관건”
미 재무부는 공급 확대를 위해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및 이란에 대한 제재 완화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다. 전쟁 전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 약 1억 2,500만 배럴에 대해 한시적 면제를 부여하고 이란이 해상에 보유 중인 원유 1억 4,000만 배럴의 제재 해제를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외국 선박의 미 국내 항구 간 에너지 운송을 허용하는 존스법(Jones Act) 60일 한시 면제를 승인하며 물류 병목 해소에 나섰다.
세계 각국도 고유가 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연료유 보조금 지급과 세금 인하로 소매가 동결을 시도 중이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주 4일 근무와 공공부문 에너지 절약을 강제하는 고강도 수요 억제책을 시행하고 있다. 인도는 가정용 가스 공급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유와 석유화학용 공급을 제한하는 우선순위 조정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행정 조치만으로는 가격 안정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시점과 중동 생산 시설의 실질적 피해 복구 속도가 유가 향방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UBS와 이코노미스트 등은 재고 보충 수요까지 고려할 때 2027년까지 고유가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