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의 기계음이 저녁 대신 한낮에 집중될 전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는 낮 시간대 전기요금을 낮추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의존도가 높은 저녁 시간대 요금을 높이는 계절·시간대별 요금 체계 개편을 16일 가동한다. 전력망의 패러다임이 단순한 공급 확대에서 가격 신호를 통해 수요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4일 오전 세종에서 정책 브리핑을 열고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의 핵심은 전력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용(을) 부문의 수요를 낮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적용하던 최고 요금을 중간 요금으로 낮추고, 전력 수요가 몰리는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중간 요금에서 최고 요금으로 단가를 올린다. 봄과 가을 주말·공휴일 낮 시간대(11~14시)에는 특별 할인도 적용한다.
이원주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전환정책실장은 “낮에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최대한 사용하고, 저녁에는 LNG 등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전력은 줄여 중동 전쟁으로 초래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거 야간 경부하 요금제 도입 때 밤 시간 전력 사용이 크게 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개편을 통해서도 시간대별 수요 이동 효과가 순차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도 개편에 맞춰 대응에 나섰다. 기후부는 준비 기간이 필요한 기업을 위해 산업용(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요금제 적용 유예 신청을 받았고, 총 514개 사업장이 유예를 신청했다. 이들 사업장은 오는 9월 30일까지 조업 시간을 조정하거나 자가발전 설비·에너지저장장치(ESS)를 도입하는 체질 개선을 거친 뒤, 10월 1일부터 새로운 요금 체계를 적용받는다.
전기차 충전 시장도 요금표 변화에 맞춰 움직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8일부터 주택과 회사에 설치된 자가소비용 충전소 9만4,000기와 공공 급속충전기 1만3,000기를 대상으로 주말 낮 시간대 전력량 요금을 50% 할인한다. 전력 공급이 넘치는 3~5월·9~10월 주말·공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가 대상이다.
김진영 기후에너지환경부 탈탄소수송과 서기관은 “할인 시간대에 충전을 시작한 구간에만 인하 단가가 적용된다”며 “예를 들어 오후 1시30분에 충전을 시작하면 2시까지는 할인 요금, 이후에는 일반 요금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할인은 기후부·한전이 운영하는 급속충전기에 적용되며, 민간 사업자 간 로밍 요금은 대상이 아니다. 김 서기관은 “일부 민간 충전 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해 주말 수요 이동을 확산하겠다”고 덧붙였다.
요금 개편은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도 흔든다. 기후부 분석 결과 산업용(을) 전체 평균 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1.7원 하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간 조업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이 24시간 공정을 돌리는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큰 원가 절감 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화학처럼 24시간 연속 공정을 가동하는 업종도 업종 전체 기준으로 평균 1.4원의 요금 인하 효과를 얻는다.
제도 적용 범위는 점진적으로 넓어진다. 오는 6월 1일부터 일반용과 교육용 전력에도 시간대별 요금을 도입한다. 주택용 요금은 현재 많이 쓸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누진제 구조를 고려해, 전국 일괄 도입 대신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늘려간다. 이미 제주에서는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고, 육지에서도 주택용 히트펌프를 설치한 가구는 누진제 대신 계절·시간대별 요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마쳤다.
오흥복 한국전력공사 기획부사장은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도 계절과 시간대별 요금제를 통해 전력 수요를 관리하고 있다”며 “각국의 차등 폭과 기준은 다르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제도”라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지면서 특정 시간대 전력 과잉과 다른 시간대 부족 현상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준이 발전소 추가 건설에서 데이터 기반 수요 분산과 가격 신호 설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시간대별 요금 개편은, “언제·어디서 전기를 얼마나 쓰게 할 것인가”를 요금표로 조정하는 구조적 실험이 본격 궤도에 오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