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 연동제가 도입된 지 9개월을 넘겼지만, 제도 설계와 현장 운영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 나보포커스 제169호 ‘납품대금 연동제 추진현황과 시사점’은 제도의 구조와 실제 활용 실태를 점검하며, 원재료 기준·가격지표·부처 간 운영체계·기업 인지도 등이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짚는다.
원가 부담 커진 수탁기업…연동제로 ‘단가 경직’ 해소 나섰지만
국내 제조업 중소기업 상당수는 다른 기업의 주문을 받아 물품·부품·반제품 등을 납품하는 수·위탁 거래를 통해 매출을 벌어들인다. 최근 몇 년 사이 원자재·에너지 가격이 크게 출렁이면서 생산비용은 올랐지만, 거래상 주도권이 약한 수탁기업이 납품단가를 제때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원가는 오르는데 단가는 그대로”인 구조가 고착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3년 10월부터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됐다. 계약 단계에서 주요 원재료와 가격 지표, 조정 기준·산식을 정해두고, 이후 원재료 가격이 약속한 범위 이상 변하면 납품대금을 함께 조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연동제를 성실히 적용하는 기업에 대해 제재 감경, 직권조사 면제, 평가 가점, 교육·컨설팅 지원 등을 제공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납품대금의 10% 이상’ 원재료 기준…실제 현장에서는 해석 차 커
제도의 출발점은 ‘주요 원재료’다. 현행 상생협력법과 지침은 납품대금에서 비용 비중이 10% 이상인 원재료를 연동 대상 기준으로 삼는다. 천연재료나 화합물뿐 아니라 가공물·중간재 등도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이다.
문제는 현실에 들어가면 이 기준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포장재나 부자재, 특정 중간재는 품목에 따라 원재료로 볼 수도, 서비스 제공을 위한 부수 비용으로 볼 수도 있다. 같은 품목이라도 위탁기업은 “원재료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수탁기업은 “원재료 비용이 핵심”이라고 보는 식의 해석 차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실태조사에서도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가 있다”고 답한 수탁기업 비율은 전체의 일부에 그쳤다.
예외 요건도 넓게 설정돼 있다. 위탁기업이 소기업이거나, 거래 기간이 90일을 넘지 않는 단기 계약, 납품대금 1억 원 이하, 양 당사자가 연동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 등에는 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나 복합 부품 가공을 하는 중소기업일수록 단일 품목 10% 기준을 맞추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제도 영향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노무비·에너지비까지 공공 지표로 지원…한국은 ‘직접 협의’ 구조
가격 전가 정책을 먼저 도입한 일본과의 비교는 우리 제도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일본은 하청법을 토대로 원재료비뿐 아니라 노무비·에너지비까지 주요 원가 요소별로 정부가 공공 지표를 제시해, 거래당사자가 계약·협상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최저임금과 인상률, 노사교섭 타결액, 공공공사 설계 노무단가, 표준운임, 임금지수·소비자물가지수는 노무비 판단 기준이 되고, 비철금속·목재·농산물·식품 가격은 원재료비를, 원유·연료 가격과 에너지 관련 지수는 에너지비를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국내 납품대금 연동제는 아직 이런 표준지표 체계가 충분히 구축돼 있지 않다. 법령은 계약서에 주요 원재료·가격지표·조정 요건·연동 산식을 기재하도록 요구하지만, 업종별·품목별 공신력 있는 기준은 일부에 그쳐 실제 협의는 기업 개별 정보와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연동 확산지원본부를 통해 원재료 가격과 물가지수를 제공하고 있으나, 참고자료 수준에 머물러 업계가 공통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수탁기업은 “원재료 가격이 이렇게 변했고, 납품단가도 이만큼 조정돼야 한다”는 논리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 원가 정보를 위탁기업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부담인 기업도 많다. 최근 조사에서 연동약정을 맺지 않은 이유로 “원가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이런 맥락을 보여준다.
참여·성과는 일부 기업 중심…전체 시장 흐름은 아직 흐릿
제도 성과를 파악하는 데에도 구조적 제약이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계약 단위로 돌아가는 제도여서, 전체 수·위탁 거래에서 어느 정도 연동 약정이 맺어지고 실제 얼마가 조정됐는지 한 번에 잡아내기 어렵다. 현재 공식 통계는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이른바 ‘동행기업’ 집단을 중심으로 산출되고 있어, 전체 시장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행기업의 거래 중 연동 의무가 적용되는 비중과 연동약정 체결률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분기 기준 납품대금 조정 규모도 수백억 원 단위에 이르고 있다. 다만 이 숫자만으로 “원가 상승분의 몇 퍼센트가 보전됐는지”, “수탁기업의 수익성·현금흐름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거래 관계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주요 원재료 가격정보 제공 범위를 넓히고, 에너지비 가이드북·설명회 등을 통해 현장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연동제 실태조사를 새로 만들어 제도 운영 상황과 성과를 체계적으로 점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납품대금 조정 규모뿐 아니라 어떤 업종·규모 기업에서 얼마나 연동을 활용하고 있는지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틀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상생협력법·하도급법 아래 두 갈래…기업 인지도도 과제
운영 체계 측면에서는 법·부처 이원화도 현장의 혼란 요인으로 꼽힌다. 상생협력법에 따른 납품대금 연동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하도급법에 따른 하도급대금 연동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운영하고 있다. 내용과 구조는 거의 같지만, 적용 법률과 담당 부처, 신고·분쟁조정 창구가 다르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거래 유형별로 “어디에 어떤 제도가 적용되는지”부터 따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제도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다. 납품대금 연동제를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절반 남짓이지만, 세부 내용까지 이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 안팎에 머문다. 하도급대금 연동제 역시 원사업자·수급사업자 모두에서 “이름은 들어봤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연동을 계약에 반영하지 않는 이유로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와의 합의”를, 수급사업자는 “제도 이해 부족”을 가장 많이 꼽아, 제도 설계와 현장 인식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동제, ‘틀은 생겼지만 운영 기초는 아직 만드는 중’
지금 시점에서 납품대금 연동제는 분명한 취지와 기본 구조를 갖춘 상태다. 원가 변동 부담을 공급망 내에서 보다 공정하게 나누고, 수탁기업이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떠안지 않도록 계약 단계에서 연동 기준을 명확히 정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은 시장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제도를 실효성 있게 만들려면 운영 기초를 더 다듬어야 한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의 요지다. 업종·품목별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원재료 판단 기준과 표준 연동 산식을 마련하고, 단일 품목 10% 기준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복합·다품종 구조에 대한 보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생협력법·하도급법에 따른 두 연동제를 현장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홍보·교육자료와 행정지침, 표준계약서를 최대한 연계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결국 납품대금 연동제가 “이름만 있는 제도”에서 “실제로 원가 부담을 나누는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가격지표 제공 체계와 적용 기준, 부처 간 운영체계 정비가 앞으로 몇 년간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기사는 국회예산정책처 나보포커스 제169호 ‘납품대금 연동제 추진현황과 시사점’을 바탕으로 주요 내용을 재구성해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