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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톺아보기] "공장만 지어선 부족하다"…'점'에서 '선'으로 바뀐 지역경제 생존 공식

처음 펼친 한국 경제 '혈관 지도'…수도권은 심장, 지방은 '공급망 허브'였다

경기도에서 생산한 반도체 일부는 공장 문을 나선 뒤 곧장 바다로 가지 않는다. 국내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물량 가운데 상당 부분은 충남으로 이동한다. 충남이 외부에서 들여오는 반도체 역시 경기도 의존도가 크다. 지도 위로 보면 두 지역은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생산물의 흐름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맞물려 있다. 한국 제조업의 몸속에서 피가 어떻게 도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가데이터처가 18일 처음 공표한 ‘2023년 지역공급사용표’는 지역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 기존 지역내총생산이 어느 지역이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보여줬다면, 이번 통계는 그 생산물이 어디서 만들어져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따라간다. 경제를 점으로 보던 방식에서 선으로 보는 방식으로 넘어간 셈이다. 지역의 체급보다 연결 방식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업 톺아보기] "공장만 지어선 부족하다"…'점'에서 '선'으로 바뀐 지역경제 생존 공식 - 산업종합저널 전자
국가데이터처 임경은 경제통계기획과장이 재정경제부에서 '지역공급사용표'를 발표하고 있다.(이브리핑 영상 캡처)


재화의 흐름은 경기와 충남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2023년 재화 이출은 경기 210.4‰, 충남 137.4‰, 경남 88.5‰ 순으로 컸다. 전기·전자·정밀기기와 석유·화학제품을 축으로 수도권과 중부권이 국내 제조업 공급망을 떠받치는 구조다. 공장은 지방에 흩어져 있지만 핵심 연결부는 경기와 충청권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서비스의 지도는 전혀 달랐다. 서비스 이출은 서울이 427.1‰로 압도적이었다. 도소매업, 전문·과학·기술서비스, 정보통신업, 금융업이 서울에서 생산돼 전국으로 퍼졌다. 서울 여의도의 금융 서비스나 강남·마포의 정보통신·전문서비스가 지역 기업과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식이다. 통계는 서울이 단순한 소비 도시가 아니라 전국 서비스 경제를 밀어내는 펌프라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시켰다.

수도권의 힘은 생산 규모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수도권은 2023년 총공급과 총사용의 46.8%를 차지했다. 권역 안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오가는 비중도 50% 안팎으로 컸다. 서울은 서비스를 내보내고 경기는 제조업 생산과 재화 이동을 담당한다. 둘은 경쟁하는 도시가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메우는 한 경제권에 가깝다.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는 일자리 개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산, 소비, 서비스, 물류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구조 자체가 수도권의 흡입력이다.

지방 제조 거점은 다른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지탱했다. 울산은 수출이 순유출을 이끌었고 전남과 충남은 원유 등 원자재 수입과 중간재·완제품 공급을 통해 외부경제 개방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는 지역이 취약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산업이 지역 안의 수요를 넘어설 만큼 커졌고 그 결과 국외와 타 지역으로 생산물이 빠져나간다는 의미에 가깝다. 다만 원자재 조달과 수출 시장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정책 대응은 더 정교해야 한다.

[산업 톺아보기] "공장만 지어선 부족하다"…'점'에서 '선'으로 바뀐 지역경제 생존 공식 - 산업종합저널 전자
개념 시각화 = 산업종합저널 (AI 활용)

통계가 던지는 메시지는 균형발전 정책에도 날카롭다. 지금까지 지역 산업정책은 “어느 지역에 어떤 공장을 세울 것인가”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공급망 데이터는 묻는다. 그 공장이 원자재를 어디서 가져오고 중간재를 어디로 보내며 완성된 생산물은 어느 지역의 서비스와 결합하는가. 공장 하나를 유치한다고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시대는 지났다. 지역 간 연결을 설계하지 못하면 투자는 섬처럼 남는다.

강원과 제주처럼 지역 내 사용 비중이 높은 곳은 내부 순환형 경제라는 장점과 외부 연결성이 약하다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대구는 최종소비 비중이 높고 경북은 비금속·금속 제품 공급지로 존재감을 보였다. 호남권은 석유·화학제품을 중심으로 개방도가 높았고 농림어업 특화도도 상대적으로 컸다. 지역마다 강점은 있었지만 그것이 곧 성장 전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강점이 공급망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읽어야 산업정책이 움직일 수 있다.

지역공급사용표는 실험적 통계다. 수치가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의미까지 실험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행정구역 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도체는 경기와 충남을 잇고 서비스는 서울에서 전국으로 뻗는다. 지방 제조업은 수출 전선에서 버티고 수도권은 내부 순환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 균형발전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어느 지역을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연결을 새로 짤 것인가. 이번 통계가 보여준 한국 경제의 민낯은 불편하지만 선명하다. 혈관을 보지 않고 심장만 탓해서는 몸 전체를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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