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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 90분 전 합의’… 삼성 파업 갈등이 남긴 질문

성과급 전쟁에서 동반성장 논쟁으로, 재계·중소기업계가 본 삼성 노사 타결

수조 원대 성과급을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반도체 생산라인 멈춤 직전에서 방향을 틀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도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총파업이 예고된 상황에서, 회사는 이재용 회장 사과와 경영진 인사 조정까지 꺼내 들며 막판 협상에 매달렸다. 정부도 “생산 차질만은 막아야 한다”는 기조로 중재에 나서면서, 노사는 5월 21일로 예정됐던 파업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파국은 피했지만 논쟁은 다른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반도체 라인이 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며 안도했고, 중소기업중앙회는 “수억 원 성과급 논쟁 속에서 협력업체가 정당한 보상을 받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내부의 보상 체계를 둘러싼 다툼이 한국 산업 전반의 임금 격차와 성과 나눔 구조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셧다운 90분 전 합의’… 삼성 파업 갈등이 남긴 질문 - 산업종합저널 전자
그래픽 = 산업종합저널 (생성형 AI 시각화)

성과급에서 시작된 임단협, 반도체 파업 직전까지
갈등의 출발점은 성과급과 임금 체계였다.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성과급 재원을 영업 성과의 일정 비율로 고정해 경영 판단에 따라 들쭉날쭉하지 않게 하고, 기본 임금 인상도 함께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글로벌 경쟁 심화와 대규모 투자 부담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며 맞섰다.

노사는 수차례 교섭에도 접점을 찾지 못했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조정 중지 이후 노조는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했고, 5월 21일부터 18일간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메모리와 HBM 등 전략 제품 라인이 포함된 반도체 공장이 실제로 멈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업계와 정부 안팎의 위기감은 빠르게 높아졌다.

회사는 사과와 인사 카드를 꺼냈다. 이재용 회장은 대내외 메시지를 통해 책임을 언급했고, 그간 교섭을 맡았던 최고경영진 라인을 일부 교체하며 노조와의 긴장 완화를 시도했다. 노동부와 경제부처는 노사를 따로 만나 생산라인 중단이 국내외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강조하며 대화 재개를 압박했다. 성과급을 둘러싼 임단협이 어느새 산업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는 양상이었다.

라인이 서기 직전 나온 절충안, 삼성의 선택
전환점은 파업 전날 밤에 찾아왔다. 노사 교섭단은 수원 경기지방고용노동청 회의실에서 장시간 협상을 이어간 끝에, 파업 개시 예정 시각을 한 시간여 남겨둔 시점에 임금·성과급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한 번도 멈춰본 적 없는 반도체 라인이 실제로 셧다운에 들어가기 직전, 방향을 바꾼 셈이다.

잠정 합의는 보상 구조를 손보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노조가 폐지를 요구했던 OPI 상한은 유지하되,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 성과를 기준으로 별도의 특별성과급 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해당 성과를 재원으로 주식 등 장기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통로를 연 것이다. 기존 상한선을 일거에 없애기보다는, 추가 보상 장치를 더해 불만을 완화하는 절충에 가깝다.

임금 인상과 사업부 간 성과 배분 방식도 조정 대상이 됐다. 흑자와 적자 사업부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차등을 둘지, 단기 보상과 미래 투자 재원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노사가 일정 수준의 합의를 이뤘다. 노조는 예고했던 전면 파업 계획을 유보하고, 잠정 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최종 인준 여부는 남아 있지만, 반도체 생산라인이 실제로 멈추는 상황은 일단 피했다.

재계 “라인 멈춤 막아”… 공급망 리스크에 초점
재계의 관심은 반도체 라인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 모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에서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대화로 합의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사가 끝까지 교섭을 이어간 결과이자, 정부 중재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포함됐다.

대한상의는 특히 생산 차질 우려가 해소된 점을 강조했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연속 가동이 기본이고, 한 번 멈추면 재가동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든다. 이 단체는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반도체 라인이 멈추는 사태를 피한 것은 삼성전자 한 회사를 넘어 수많은 협력업체와 소재·부품·장비 업체, 국민경제 전체에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개별 기업의 노사분쟁이 곧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직결되는 구조를 드러낸 셈이다.

상의는 노사관계 방식 변화도 주문했다. “소모적인 대립을 벗어나 신뢰와 협력에 기반한 관계로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를 함께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사업장의 분쟁 해결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 “성과가 원청에만 쏠려선 안 된다”
중소기업계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입장문을 통해 “삼성전자 노사가 반도체 라인이 멈추는 상황까지 가지 않고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수억 원대 성과급 논쟁 속에서 협력 중소기업에는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중앙회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과 복지 격차를 구조적 문제로 본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상여금과 복리후생 차이는 더 크다는 것이 업계의 체감이다. 한국 반도체가 세계 선두권에 오른 배경에는 수천 개 협력업체와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의 역할이 있지만, 성과와 이익은 여전히 원청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단체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수많은 협력업체와 소부장 중소기업이 ‘원팀’으로 쌓아 올린 성과이며, 이들의 기여와 역할도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동반성장 방안이 실제로 협력업체의 연구개발, 설비투자,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보겠다는 뜻도 밝혔다. 성과가 상위 몇 개 기업 안에서만 순환하는 구조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메시지다.

성과와 위험의 배분, 다음 싸움의 쟁점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충돌이 드러낸 쟁점은 단순히 한 해 성과급 수준을 넘어선다. 회사 내부에서는 사업부와 직군, 단기 보상과 미래 투자, 상한과 추가 보상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한 단계 바깥에서는 “공급망 전체에서 성과와 위험이 어떻게 나뉘고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대한상의와 중소기업중앙회의 시각 차이는 이 이중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쪽은 “공장이 서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시스템 리스크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쪽은 “그 공장을 함께 돌린 이들에게 얼마나 돌아갔는지”를 묻고 있다. 두 질문 모두 한국 산업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와 맞닿아 있다.

반도체 라인은 계속 돌아간다. 진짜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성과급 체계와 상생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협력업체의 임금과 투자 여건이 실제로 개선되는지, 다음 임단협에서 같은 갈등이 되풀이되지 않는지에 따라 이번 합의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이번 타결이 단순한 위기 모면에 그칠지, 보상과 책임을 나누는 방식을 다시 짜는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의 시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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