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의 문제는 이제 상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판매처마다 다른 가격과 할인 조건, 수백 개씩 쌓이는 리뷰, 비슷해 보이는 사양을 하나씩 대조하다 보면 물건을 고르는 일 자체가 노동이 된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쇼핑 에이전트가 파고드는 지점도 바로 이 틈이다. 소비자를 대신해 무조건 결제하는 기술보다 비교하고 요약하고 후보를 좁혀주는 역할에서 먼저 효용을 인정받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AI 쇼핑 에이전트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9~69세 남녀 1,000명 가운데 57.3%는 상품과 최저가를 일일이 비교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상품 정보와 리뷰가 너무 많아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응답도 57.0%였다. AI 쇼핑 에이전트 기능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비율은 54.2%로 나타났다.
![[이슈] AI가 장바구니 앞까지 왔다…소비자는 왜 ‘마지막 클릭’을 넘기지 않나 - 산업종합저널 전자](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8/31/thumbs/thumb_520390_1788141405_88.jpg)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가상 이미지입니다.
비교는 AI에 맡겨도 결제는 내가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은 비교적 선명하다. 엠브레인 조사에서 AI 쇼핑 에이전트의 향후 이용 의향은 78.4%에 달했다. 관심이 높은 기능은 실시간 최저가 탐색과 쿠폰 자동 적용, 리뷰 요약과 장·단점 분석, 가격 변동 추이 확인, 복잡한 상품 사양·성분 비교 등에 몰렸다.
수십 개 창을 넘나들며 정보를 모으는 수고는 AI에 맡기고 싶지만 구매 결정 자체까지 넘기려는 태도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응답자의 74.0%는 AI 서비스가 편리해지더라도 최종 결제 버튼은 사람이 직접 눌러야 한다고 답했다. AI가 발전해도 사람이 직접 선택하고 구매하는 영역이 남을 것이라는 응답도 68.6%였다.
위임 가능한 품목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반복 구매가 많은 생필품과 잡화, 가공식품·음료에서는 AI 활용에 상대적으로 열린 태도가 나타난 반면 가전·디지털 기기와 패션, 여행·서비스 예약처럼 가격뿐 아니라 취향과 사용 맥락을 따져야 하는 분야에서는 직접 판단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해외에서도 AI가 상품 탐색의 입구로 들어오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세일즈포스의 ‘Connected Shoppers Report 2025’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자의 39%가 이미 AI를 제품 탐색에 활용하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AI를 통한 상품 발견이 늘면서 유통업체가 기존 키워드 중심 검색최적화에서 벗어나 상품 설명과 리뷰, 재고 같은 정보를 AI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탐색하던 AI, 이제 결제 단계까지 들어온다
글로벌 플랫폼의 움직임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AI의 역할이 상품 추천과 비교에 머물지 않고 구매 과정까지 넓어지는 흐름이다.
OpenAI의 쇼핑 리서치는 이용자가 예산과 취향, 조건을 제시하면 상품을 찾고 가격과 특징, 리뷰 등을 비교해 맞춤형 구매 가이드를 제공한다. 여러 조건이 충돌하는 구매에서 후보별 장단점을 나란히 보여주는 방식이다. 현재 일부 대상 상품과 판매자에서는 ChatGPT 안에서 결제를 마칠 수 있는 Instant Checkout도 지원한다. 다만 쇼핑 리서치의 기본 구조는 여전히 이용자가 조건을 제시하고 비교 결과를 확인한 뒤 구매 여부를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구글도 AI Mode를 쇼핑 영역으로 확대했다. 자연어로 원하는 제품을 설명하면 Shopping Graph를 바탕으로 후보를 좁혀주고, 이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올려 의류 착용 모습을 확인하는 가상 피팅 기능도 제공한다. 여기에 원하는 가격 조건이 충족됐을 때 Google Pay를 활용해 구매를 진행하는 에이전트형 결제까지 제시했다. 구글은 이 과정에서도 이용자의 지시와 감독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술의 방향은 분명하다. AI가 장바구니 앞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결제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다만 ‘알아서 사주는 AI’보다 사용자가 언제든 개입하고 승인할 수 있는 구조가 함께 강조되는 모습이다.
취향은 숫자로만 고르기 어렵다
자동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기술 성능만이 아니다. 쇼핑에는 가격표로 환산하기 어려운 판단이 끼어든다.
세제나 생수처럼 반복해서 사는 물건은 가격과 배송 조건이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옷 한 벌이나 노트북, 여행상품은 다르다. 색과 디자인, 사용 습관, 여행 목적처럼 사람마다 다른 맥락이 개입한다. 엠브레인 조사에서도 AI에 쇼핑을 전적으로 맡기기 어려운 이유로 데이터 분석만으로 개인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AI가 가격과 별점, 사양을 계산하는 능력은 빠르게 좋아져도 ‘내가 정말 이것을 원하는가’라는 질문까지 대신 답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쇼핑이 계산만으로 끝나지 않는 한 사람의 판단이 남을 공간도 사라지지 않는다.
추천이 거래가 되면 ‘누가 책임지나’가 남는다
AI가 상품 후보를 보여주는 것과 실제 구매를 실행하는 것은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추천 정보가 틀렸을 때는 다른 상품을 찾으면 되지만 잘못된 가격이나 재고 정보로 주문이 이뤄지거나 배송·환불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
AI 쇼핑이 깊어질수록 상품 데이터의 정확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가격과 재고, 배송조건, 판매자 정보가 실시간에 가깝게 관리되지 않으면 에이전트가 아무리 정교해도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OpenAI도 쇼핑 정보의 가격과 재고 등이 틀릴 수 있다며 정확한 내용은 판매처에서 다시 확인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규제 역시 이 문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은 온라인 플랫폼에 추천 시스템의 주요 작동 원리를 설명하도록 하고 광고 표시와 판매자 추적성도 강화했다. 대형 플랫폼에는 이용자 프로파일링에 기반하지 않은 추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의무도 적용된다. AI가 상품의 노출과 추천에 더 깊숙이 개입할수록 ‘왜 이것을 보여줬는가’와 ‘누가 판매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유통 경쟁, 검색 순위에서 ‘AI가 읽을 수 있는 상품’으로
쇼핑 에이전트의 확산은 유통업체와 브랜드에도 다른 숙제를 던진다. 사람이 검색창에 상품명을 입력하고 검색결과를 하나씩 눌러보던 시절에는 검색 상단에 얼마나 잘 노출되는지가 중요했다.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후보를 추리는 환경에서는 상품 정보 자체가 얼마나 정확하고 비교하기 쉽게 정리돼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세일즈포스도 AI 기반 상품 탐색이 늘면서 제품 카탈로그와 리뷰, 재고 정보를 AI가 이해하고 추천할 수 있는 형태로 관리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인 검색엔진최적화(SEO)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용자가 해결하려는 문제와 제품의 특징을 연결할 수 있는 풍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AI가 대신 찾아주고 비교하며 일부 거래까지 실행하는 쇼핑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권까지 넘겨주는 완전한 대리인이 아니라 번거로운 판단 과정을 줄여주면서도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조력자에 더 가깝다.
앞으로 유통 플랫폼의 경쟁은 AI가 얼마나 많은 구매를 자동으로 끝내느냐만으로 갈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추천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지, 상품 정보를 정확하게 유지하는지, 구매 직전 소비자가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가 함께 시험대에 오른다. AI가 장바구니를 대신 채우는 시대에도 마지막 클릭을 누가 쥐고 있는지는 여전히 신뢰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