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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①] AI가 먼저 바꾼 ‘첫 일자리’…청년은 어디서 경력을 시작하나

입직 초기 정형 업무 줄고 요구 역량은 높아져…‘일자리 소멸’보다 먼저 흔들리는 경력 사다리

신입사원이 첫 출근 뒤 맡는 일은 대개 거창하지 않다. 자료를 정리하고 문서 초안을 만들고 선배가 고쳐준 결과물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조직의 언어와 일하는 방식을 익힌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가장 빠르게 파고든 영역도 바로 이런 일이다. 직업 자체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청년이 처음 맡아 경험을 쌓던 과업이 줄면 경력을 만드는 출발점도 함께 좁아질 수 있다.

AI와 청년 고용을 둘러싼 논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인가’에 집중됐다. 하지만 더 먼저 나타날 변화는 일자리의 소멸보다 경력 형성 과정의 재편일 수 있다. 이 기획은 AI가 청년 일자리의 총량을 얼마나 줄이는지보다 청년이 어디에서 첫 일을 맡고 어떻게 경험을 다음 경력으로 이어갈지를 세 차례에 걸쳐 짚는다. 첫 편에서는 초급 직무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어 해외의 경력 연결 정책과 한국의 ‘첫 경력 사다리’ 재설계 과제를 들여다본다.


[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①] AI가 먼저 바꾼 ‘첫 일자리’…청년은 어디서 경력을 시작하나 - 산업종합저널 FA
AI 생성 이미지 | 기획·제작 산업종합저널

국제노동기구(ILO)는 생성형 AI의 영향이 직업 전체의 대체보다 직무를 구성하는 과업의 변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계경제포럼(WEF)도 AI 확산이 기업의 직무 구조와 요구 역량을 빠르게 바꿀 것으로 전망한다.

직업보다 먼저 줄어드는 ‘배우는 일’
신입사원이 맡아온 자료 정리와 보고서 초안 작성, 기초 분석, 고객 응대 보조는 단순한 허드렛일만은 아니었다. 작은 실수를 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업무 맥락을 익히는 일종의 훈련장이었다.

AI가 이런 정형 업무를 빠르게 보조하거나 대신하면 기업은 같은 일을 더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수 있다. 동시에 신입에게도 문제 해결과 결과 검증, 협업 같은 한 단계 높은 역량을 처음부터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ILO는 판단과 상호작용, 검증, 맥락 이해가 필요한 과업에는 여전히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기보다 사람과 AI가 역할을 다시 나누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청년에게 문제는 그 역할 분담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경력자는 이미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AI 결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사회 초년생은 그 판단력을 길러야 할 경험부터 필요하다. AI가 입문 단계의 일을 압축할수록 ‘경력이 없어서 취업하지 못하고 취업하지 못해 경력을 만들지 못하는’ 역설은 더 짙어질 수 있다.

좁아지는 채용문, 높아지는 출발선
AI 도구는 초안 작성과 요약, 검색, 분류, 기초 분석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과거 여러 초급 인력이 나눠 하던 업무를 더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남는 일의 성격도 달라진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맞는지 확인하고 문제를 다시 정의하며 고객의 맥락을 읽고 다른 부서와 조율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WEF는 2030년까지 기업이 요구하는 핵심 역량의 상당 부분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AI와 데이터 활용 능력뿐 아니라 분석적 사고와 창의성, 유연성, 협업 등 인간 중심 역량도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①] AI가 먼저 바꾼 ‘첫 일자리’…청년은 어디서 경력을 시작하나 - 산업종합저널 FA
청년 채용과 AI 역량 수요 변화를 표현한 AI 생성 이미지. 기획·제작=산업종합저널

청년에게는 채용 기회와 요구 수준이 동시에 움직이는 문제다. 입직 자리는 줄어들 수 있는데 기업이 기대하는 출발선은 더 높아진다. 과거 입사 뒤 배우던 능력 가운데 일부를 채용 전에 갖추라는 요구로 바뀔 수도 있다.

AI가 일할수록 사람은 더 일찍 판단해야 한다
청년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AI가 정형 업무를 맡을수록 사람이 해야 할 판단과 검증의 가치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문제는 경험 없는 청년이 그 역량을 어디에서 배울 것인가에 있다.

첫 일자리의 설계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AI를 활용해 자료를 만들고 사람이 오류를 찾아내는 경험, 고객 요구를 해석해 결과를 수정하는 경험, 동료와 협업해 산출물을 완성하는 과정이 초급자의 새로운 학습 과업이 될 수 있다.

AI가 없애는 일만 세어서는 이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청년에게 더 절박한 질문은 ‘몇 개의 일자리가 남을까’보다 ‘누가 나에게 첫 일을 맡겨줄 것인가’에 가깝다. 첫 과업이 줄어드는 시대에는 경험이 저절로 경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 업무와 피드백, 멘토링을 통해 첫 경험을 다음 단계로 연결할 경로가 필요하다.

‘사라지는 첫 경력’은 청년의 일자리가 모두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하게 존재했던 경력의 출발점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첫발을 디딜 자리가 좁아진 시대에 그 경로를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 다음 편에서는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싱가포르가 청년의 일경험을 ‘체험’이 아닌 다음 일자리로 이어지는 경로로 설계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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