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캐나다, 싱가포르가 내놓은 해법은 청년에게 단기 체험을 하나 더 제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미취업 상태에 놓인 청년을 가능한 빨리 고용이나 교육, 훈련으로 옮기고 기업이 실제 일자리를 내놓도록 유도하며 일경험 뒤에는 멘토링과 평가를 붙인다. 경험을 ‘한 번 해본 일’이 아니라 다음 일자리로 이어지는 경력으로 만드는 구조다.
앞선 1편이 AI 확산으로 청년의 첫 과업과 학습 구간이 어떻게 좁아질 수 있는지를 짚었다면 두 번째 질문은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얻던 입직 경험이 줄어드는 시대에 청년의 첫 경력을 어떤 제도로 만들어줄 것인가다.
청년 실업이나 미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는 개인의 취업 준비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노동시장에 들어갈 첫 문을 찾지 못한 채 공백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청년정책이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몇 명을 프로그램에 참여시켰는가보다 청년이 얼마나 빨리 다음 고용이나 교육·훈련 단계로 이동했는지를 정책 설계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EU는 ‘4개월 안에 다음 기회’로 묶었다
EU의 강화된 청년보장제는 이 원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회원국들은 청년이 실직하거나 정규교육을 마친 뒤 4개월 안에 고용, 계속교육, 견습, 훈련 가운데 하나의 양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핵심은 단순한 구직 알선이 아니다. 청년이 노동시장 밖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도록 공공이 개입해 다음 단계로 옮기는 데 있다. 곧바로 취업하기 어렵다면 훈련이나 계속교육으로, 직무 경험이 부족하다면 견습으로 연결해 공백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지원 수단도 하나로 묶지 않는다. 고용과 교육, 직업훈련, 견습을 청년의 상황에 따라 연결하고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역정부와 고용서비스 기관 등이 실행에 참여한다. 청년 한 명이 어떤 지원을 받고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연속적인 경로 안에서 관리하려는 구조다.
이 제도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청년정책의 성과를 프로그램 참가 인원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취업 상태에 들어간 청년이 얼마나 오래 공백에 머물렀는지, 이후 고용이나 교육·훈련으로 얼마나 빠르게 이동했는지가 중요해진다.
한국처럼 진로탐색, 직무교육, 인턴, 취업지원이 각각 다른 사업으로 존재하는 환경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선명하다. 프로그램 하나의 수료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간이 정책의 관심사가 된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임금보조로 기업의 ‘첫 기회’ 공급을 만든다
캐나다는 청년고용·기술전략을 통해 청년의 취업과 경력 개발, 기술 습득을 지원하면서 기업과 기관이 직접 고용 기회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청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을 고용하는 주체의 부담도 함께 낮추는 방식이다.
첫 경력이 없는 청년을 채용하는 일은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수반한다. 직무교육과 관리에 시간이 들고 숙련 인력보다 초기 생산성이 낮을 수도 있다. 경력직 선호가 강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캐나다는 임금보조 등을 통해 이런 부담의 일부를 공공이 나눠 갖는다. 공공기관과 비영리기관, 민간기업 등 다양한 고용 주체가 청년에게 첫 일경험을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상대적으로 채용 여력이 부족한 고용주도 청년 고용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청년 입장에서는 단순한 직장 체험과 차이가 있다. 실제 고용 관계 안에서 임금을 받고 업무를 수행한 기록이 남는다. 기업은 청년을 단기간 경험시켜 보내는 대상보다 일정한 지원을 바탕으로 길러볼 수 있는 인력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커진다.
결국 첫 경력의 공급자를 청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지 않는 셈이다. 기업이 ‘경력 없는 사람에게 왜 첫 기회를 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재정적 유인을 붙이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고용·훈련·멘토링을 한 묶음으로 설계했다
싱가포르는 일경험과 교육의 경계를 좁히는 데 초점을 둔다. 스킬스퓨처 워크-스터디 프로그램은 고등교육기관과 기업이 함께 과정을 설계하고 청년이 전공과 연결된 업무를 수행하면서 구조화된 현장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회사에 출근해 일을 경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참여 과정에 따라 기업과 교육기관이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운영하고 직장 내 성과와 학습 결과도 평가한다. 기업에는 훈련생을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이 제공된다.
운영 방식도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 학기와 현장근무 기간을 번갈아 구성하거나 주중 일부는 기업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육을 받는 식으로 학습과 업무를 동시에 이어간다.
현장에는 구조화된 직무훈련과 멘토링이 붙는다. 기업도 단순 업무를 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이 어떤 역량을 쌓을지 경력 개발 계획을 제시한다.
이런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경험의 내용이 남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에서 몇 달 근무했다’는 사실만 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무를 수행했고 어떤 훈련을 받았으며 어떤 역량을 평가받았는지가 경력의 증거가 된다.
AI 시대에는 이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 단순 반복 업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청년에게 일을 맡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과업을 수행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결과를 수정하며 직무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 자체를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일경험의 품질’을 제도화한다는 점
EU와 캐나다, 싱가포르의 제도는 모습이 서로 다르다. EU는 청년의 공백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캐나다는 기업이 첫 일자리를 공급하도록 비용 부담을 낮춘다. 싱가포르는 고용과 교육, 멘토링을 한 과정 안에 묶는다.
공통점은 경험을 청년 개인의 운에 맡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시장 밖에 머무는 시간을 관리하고 기업이 실제 일을 맡기도록 유도하며 그 경험에 훈련과 멘토링, 평가를 붙인다.
이 점은 AI 확산으로 초급 업무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더 중요해진다. 과거에는 신입으로 입사해 비교적 단순한 업무부터 맡으며 자연스럽게 직무를 배울 수 있었다. 그 입문 구간이 좁아지면 ‘회사에 들어가면 배울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
한국에도 진로탐색과 직무교육, 인턴·일경험, 채용지원 등 청년을 대상으로 한 수단은 적지 않다. 문제는 이 사업들이 청년 한 사람의 시간 위에서 하나의 경로로 이어지느냐다. 교육을 마친 뒤 일경험으로, 일경험을 마친 뒤 실제 고용으로 얼마나 이동했는지까지 연결해 보지 않으면 참여 횟수는 늘어도 경력은 끊길 수 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의 숫자보다 연결의 힘이다. 청년이 학교를 떠난 뒤 알아보고 배우고 실제로 해본 다음 일자리로 들어가는 과정이 끊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몇 명이 참여했는가’보다 ‘그 경험 뒤 어디로 이동했는가’를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시대에 청년의 첫 경력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기업 한 곳이나 교육기관 하나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첫 과업이 줄어드는 만큼 기업이 경험 없는 청년을 받아들일 유인을 만들고 교육과 실제 업무 사이의 간격을 줄이며 경험이 채용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장치가 함께 필요하다.
해외가 보여준 경력 사다리를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노동시장과 교육제도, 기업의 채용 관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질문은 한국에도 그대로 남는다. 기업의 채용과 대학의 교육·훈련, 정부의 청년지원이 각각 움직이는 구조에서 누가 청년의 첫 경험을 ‘다음 경력’까지 책임질 것인가. 세 번째 편에서는 이 세 축을 하나의 경로로 연결하기 위해 한국의 청년정책과 초급 직무 설계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