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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③] 한국도 ‘첫 경력 사다리’ 다시 짜야…참여 인원보다 ‘취업·유지·이동’

기업 채용·대학 훈련·정부 지원 연결…실제 과업·멘토링·고용 유지까지 평가해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신입사원의 업무를 바꾸면서 청년 고용의 과제도 달라지고 있다. 자료 정리와 문서 초안, 기본 분석처럼 사회 초년생이 맡아온 업무를 AI가 대신하거나 보조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반면 판단과 검증 능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채용 인원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이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 다음 직무로 나아갈 수 있는 ‘첫 경력 사다리’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③] 한국도 ‘첫 경력 사다리’ 다시 짜야…참여 인원보다 ‘취업·유지·이동’ - 산업종합저널 FA
AI 생성 이미지 | 기획·제작 산업종합저널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내 청년고용 분석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18일 발간한 BOK 이슈노트 제2026-19호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다. 이 가운데 26만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어 전체 감소분에 대한 기여율이 94%로 나타났다.

AI만으로 청년고용 위축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도 팬데믹 이후 과잉채용 조정과 경력직 중심 채용, 기업 내부교육 약화, 재택근무 확산 등이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고 봤다. AI가 고용 감소의 단일 원인이라기보다 기존 채용·업무 방식의 변화를 가속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주목할 대목은 신규 채용 감소뿐 아니라 취업한 청년 근로자의 유출도 늘었다는 점이다. 특히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실업자로 이탈한 청년이 증가했다. 청년이 직장에 머물며 경험과 숙련을 쌓는 과정까지 약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경제포럼(WEF)도 AI 확산에 맞춰 초기 경력 경로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WEF가 지난 6월 발표한 ‘인공지능과 초급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전 세계 청년 근로자 3명 중 1명 이상이 AI로 인한 업무 변화에 중간 이상 노출된 직종에 종사한다고 분석했다. 직무 접근성과 업무 설계, 인재 육성 경로, 교육체계 연계를 함께 손봐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기업이 초급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단기적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신입 채용부터 현장 학습, 숙련인력 육성으로 이어지는 내부 인재 공급망까지 약화할 수 있다.

기업은 ‘즉시 전력’보다 성장할 과업 만들어야
AI 시대의 초급 직무 재설계는 신입에게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맡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AI에 맡길 업무와 사람이 경험을 쌓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업을 다시 나누자는 것이다.

[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③] 한국도 ‘첫 경력 사다리’ 다시 짜야…참여 인원보다 ‘취업·유지·이동’ - 산업종합저널 FA
일러스트 = 산업종합저널 (생성형 AI)

보고서 초안 작성과 자료 분류, 단순 응대는 AI가 상당 부분 보조할 수 있다. 대신 초급 인력은 AI가 만든 결과에서 오류를 찾고 자료의 맥락을 보완하며 고객이나 현업 부서의 요구를 반영하는 과정을 더 일찍 경험할 수 있다.

AI를 업무 자동화보다 사람의 판단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활용한 업종에서 청년고용 감소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는 한국은행 분석도 이러한 방향을 뒷받침한다. AI 도입 자체보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과업만큼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다. 결과가 왜 틀렸는지, 어떤 판단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선배와 관리자가 짚어줘야 경험이 역량으로 남는다. 반복 업무가 사라진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 판단과 검증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배우는 일’로 채워야 한다.

채용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얼마나 빨리 혼자 일할 수 있는지를 우선하면 기업의 경력직 선호가 강해질 수 있다. AI를 활용해 결과를 검증하고 다른 구성원과 협업할 수 있는 잠재력을 평가한 뒤 실제 과업과 멘토링을 통해 성장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대학·훈련기관, 수료증보다 ‘일해본 기록’
기업의 초급 직무가 달라지면 교육과 훈련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강의를 들었다는 기록이나 자격증만으로는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을 보여주기 어렵다.

AI로 자료를 조사하고 결과를 검증·수정한 경험, 팀원과 역할을 나눠 결과물을 완성한 과정, 현업의 문제를 받아 해결책을 마련한 기록이 역량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교육과정도 이러한 경험이 남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출석률과 시험점수뿐 아니라 어떤 과업을 수행했고 어떤 피드백을 받았으며 결과물을 어떻게 고쳤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스킬스퓨처 워크스터디 학위 과정’은 기업과 대학이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설계·운영하고 현장 성과도 함께 평가한다. 교실 수업과 구조화된 현장훈련을 연결해 졸업 이후 일터로의 진입을 돕는 방식이다.

워크스터디 디플로마 과정은 전공과 연관된 정규고용에 현장훈련과 멘토링, 경력개발 경로를 결합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수료증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해봤고, 어떤 피드백을 받아, 결과를 어떻게 바꿨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이다.

정책 성과, ‘몇 명 참여했나’ 넘어야
정부 정책도 참여 인원만으로 성과를 판단해서는 첫 경력 형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과 인턴, 일경험 사업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는 사업 규모를 보여줄 뿐 실제 취업과 경력 축적으로 이어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단순한 취업·실업 상태가 아니라 학교에서 안정적이거나 본인이 만족하는 일자리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청년을 ‘전환 완료’, ‘전환 중’, ‘전환 미시작’ 등으로 구분해 입직 과정과 결과를 함께 파악하는 방식이다.

국내 청년정책도 프로그램 종료 이후까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나 일경험을 마친 뒤 실제 취업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참여자가 수행한 과업이 희망 직무와 연결됐는지, 6개월과 12개월 뒤에도 고용이 유지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후 임금과 직무 수준이 나아졌는지도 평가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참여자 1만명이라는 숫자는 사업 실적을 보여주기 쉽다. 그러나 이 가운데 몇 명이 취업했고 얼마나 오래 일했으며 어떤 직무로 이동했는지가 빠지면 정책이 첫 경력을 만들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청년정책의 성과 단위를 ‘몇 명이 참여했는가’에서 ‘교육과 일경험이 취업으로 이어지고 그 경력이 유지·발전했는가’로 바꿔야 한다.

[기획-사라지는 첫 경력③] 한국도 ‘첫 경력 사다리’ 다시 짜야…참여 인원보다 ‘취업·유지·이동’ - 산업종합저널 FA
AI 생성 이미지 | 기획·제작 산업종합저널

흩어진 지원, 하나의 ‘첫 경력 경로’로
한국에는 진로 탐색과 직무교육, 인턴, 일경험, 취업지원 등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적지 않다. 문제는 개별 사업이 청년 한 사람의 경력 경로에서 서로 이어지는가다.

대학에서 직무교육을 받아도 기업이 별도의 경험을 요구하고 일경험 사업을 마쳐도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청년은 유사한 프로그램 사이를 반복해서 오가게 된다. 정부는 교육을 지원하고 대학은 수료증을 발급하며 기업은 경력자를 찾는 구조에서는 각각의 사업이 운영돼도 입직 사다리는 연결되지 않는다.

기업은 AI 시대에 맞는 초급 직무와 현장 적응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대학과 훈련기관은 실제 과업과 피드백이 남는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사업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에서 일경험으로, 일경험에서 채용으로 이어지도록 지원 기준과 기업 인센티브, 성과평가 방식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도 기존 초급 일자리를 그대로 보전하는 방식보다 청년이 AI와 함께 일하며 경험과 암묵지를 축적할 수 있도록 경력 사다리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한 정책 과제로 AI 시대에 맞는 직업훈련과 기업의 훈련·멘토링 비용 지원, 기술투자와 인재 양성 간 정책지원의 균형 점검을 제시했다.

AI 시대 청년 고용의 위기는 일자리 숫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직업이 남아 있어도 첫 과업과 실수하며 배울 자리가 사라지면 경험과 숙련을 쌓을 경로는 약해질 수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발성 체험을 하나 더 얹는 일이 아니다. 교육에서 일경험으로, 일경험에서 취업으로, 첫 직장에서 다음 경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AI가 일부 초급 업무를 대신할 수는 있다. 그 빈자리에 새로운 배움의 경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청년이 올라설 첫 번째 경력 사다리도 함께 좁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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