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세계 최고 품질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을 목표로 233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세계 배터리 판매량의 35%를 점유한 전기자동차용 LFP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한국의 LFP 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LFP 배터리는 중국 기업이 전 세계 생산량의 95%이상을 점유하고, 원자재 생산 단계부터 수직계열화를 이뤄 우월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태생적 한계’지닌 LFP 배터리…급부상한 이유는?
LFP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를 주축으로 하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 거리가 짧아 한계가 명확하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 무거워지고, 가볍게 만들면 주행 거리가 짧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핵심 광물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니켈‧코발트를 사용하지 않는 이점이 부각되고, 주재료인 인(P)과 철(Fe)은 삼원계 배터리 소재보다 훨씬 흔한 원소다.
또한, 배터리 자체 성능도 개선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하 KIEP)이 지난달 발표한 ‘중국 LFP 배터리 공급망 분석 및 시사점(최재희, 이하 보고서)’보고서는 중국 LFP 배터리의 셀 단위 평균 에너지 밀도가 2020년 킬로그램 당 145~160와트시(Wh/kg)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양산 능력 기준으로 킬로그램 당 최대 210와트시 수준에 도달하고 주행 거리도 400km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LFP 배터리가 고에너지밀도를 요구하지 않는 보급형 전기차, ESS(에너지 저장 장치), 전기 선박 등을 중심으로 배터리 수요를 양분하고, BMW‧테슬라‧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이 LFP 채용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배터리 3사도 최근 LFP 개발 및 상용화에 착수했다. 산업부도 이에 발맞춰 LFP 연구개발 자금 지원을 발표한 것이다.
생산 기술 및 공급망 우월한 중국
LFP 후발주자인 한국이 중국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기업은 배터리 핵심 광물의 채굴 및 제련 분야에서 글로벌 점유율이 높고, 공급망의 수직계열화로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혁신도 지속하고 있어 따라잡기는 더욱 어렵다.
현재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급은 중국 CATL과 BYD가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 사는 중국 내 리튬 염호‧광산은 물론 남미, 캐나다, 호주 등지의 리튬 자원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LFP 생산 기술력을 따라잡더라도 중국과의 원재료 확보 경쟁에 부딪히는 것이다.
원료 채굴 이후 여러 단계의 제련, 정제,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상암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진행된 ‘K-배터리 산업전망 컨퍼런스(이하 컨퍼런스)’에서 “중국이 세계 배터리 정제‧제련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5%로 매우 높다”고 언급했다.
같은 자리에서 조성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본부 본부장도 “배터리 원재료 개발은 여러 곳에서 하지만, 공급망 중간에 항상 중국을 거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 공급망의 수직계열화를 확립한 중국에 비해 공급망을 재편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이다.
中기업 진출 못할 줄 알았던 미국 시장…우회적 진입 ‘묘수’
한국 배터리 3사가 뒤늦게 LFP 개발에 착수한 배경은 LFP 배터리 수요 증가도 있지만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영향도 크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컨퍼런스에서 “IRA로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이 막혔고,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한국 3사가 LFP 개발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묘수’로 이마저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와 중국의 CATL이 합작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포드가 공장을 100% 소유하고 CATL이 기술과 생산 장비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IRA를 우회했다.
테슬라도 이에 동참했다. ‘반값 전기차’를 선언한 테슬라가 저렴한 LFP배터리를 도입하며 CATL과 손을 잡은 것이다. 정원석 연구원은 “중국의 진출이 막힌 상황이라면 한국 기업도 미국 시장에서 LFP 배터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중국이 들어온다면 굳이 큰 투자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LFP, 삼원계 배터리 점유율 역전 가능성…중국 기업과 경합 대비해야
LFP 배터리는 저사양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장치), 전기 선박을 중심으로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다. 고성능 전기차는 에너지 밀도가 높으면서도 가벼운 삼원계 배터리 장착이 필수지만, 고에너지밀도를 요구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LFP 배터리가 삼원계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다.
KIEP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2020년 11%에서 지난해 31%까지 급증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이미 LFP 점유율이 삼원계 점유율을 넘어섰으며, 세계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한국 배터리 기업은 IRA 등 관련 제도 모니터링, 생산 과정의 광물 수입선 다변화, 생산 제품의 수출 다변화 등으로 중국 기업과의 경합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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