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오후 대전 대덕구 문평동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불이 났다.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작업자 14명이 숨졌고 전체 인명피해는 74명으로 집계됐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탄 공장 하나가 아니었다. 공장 화재가 왜 매번 ‘사고’를 넘어 ‘참사’가 되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낸 ‘공장 화재 왜 커지나: 고위험 공정의 구조적 위험과 안전관리의 사각지대’ 보고서는 이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공장 화재는 한 사업장의 부주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가연성 물질과 분진, 인화성 액체와 가스, 대형 생산설비, 복잡한 동선이 한 공간에 겹쳐 있다. 불이 붙는 순간 연소와 확산이 동시에 일어난다. 일반 건축물과 같은 기준으로 다루기 어려운 이유다.
공장은 처음 설계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다. 생산량이 늘면 설비가 추가된다. 라인이 바뀌면 공간도 다시 나뉜다. 임시 적재물이 통로를 막고, 증축과 재배치가 반복되면 설계 단계에서 확보했던 방화구획과 피난 동선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화재 때 연기와 열기를 막아야 할 벽은 뚫리고, 사람이 빠져나와야 할 길은 좁아진다. 참사는 불이 난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벽 하나, 통로 하나, 점검표 하나를 가볍게 넘긴 시간이 쌓이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진다.
‘얼마나 큰 공장인가’만 보는 기준의 허점
현행 소방시설 설치 기준은 주로 면적과 층수를 본다. 문제는 공장의 위험이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면적의 공장이라도 무엇을 만들고, 어떤 물질을 다루며, 분진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에 따라 위험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집진설비를 돌리는 공정과 단순 조립 공정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가연성 물질을 대량으로 다루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정 규모 미만의 공장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에서 빠질 수 있다. 공정의 성격보다 건물의 외형이 먼저 고려되는 셈이다. 이 틈에서 위험한 공정은 제도 밖에 남는다. 불은 면적을 보고 번지지 않는다. 불은 먼지와 기름, 열과 바람, 막힌 통로를 타고 번진다. 기준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안전장치는 있어도 필요한 자리에 놓이지 못한다.
경보가 너무 자주 울리면 경보는 소음이 된다
화재탐지설비의 신뢰도도 심각한 문제다. 공장 안에는 먼지와 수증기, 열이 늘 섞여 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실제 화재가 아닌 상황에서도 울리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공장 환경에서 비화재보 문제가 초기 대응을 흔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경보 대부분을 오작동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굳어지면, 진짜 불이 났을 때도 사람은 망설인다.
이 대목이 공장 화재의 잔인한 역설이다. 경보가 없어서만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다. 경보가 있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는 순간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처음 몇 분 안에 끊어야 할 불길은 생산설비와 적재물 사이로 번지고, 연기는 피난로를 먼저 삼킨다. 대피 방송과 감지기가 작동했는지 여부만 따져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그 신호를 믿고 움직일 수 있었는지까지 봐야 한다.
점검표가 아니라 공장 구조를 봐야 한다
소방시설 자체점검도 형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저가 수주 관행이 굳어지면 점검은 빨리 끝내야 하는 절차가 된다. 설비가 있는지, 작동은 하는지 확인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그 설비가 바뀐 공정과 새로 놓인 장비, 달라진 피난 동선 속에서 여전히 제 역할을 하는지 봐야 한다.
건축과 소방 관리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도 문제다. 공장 안에서 일어나는 증축과 구조 변경은 건축 안전의 문제이자 소방 안전의 문제다. 그런데 관리 권한이 나뉘면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 벽이 바뀌고 통로가 막히고 설비가 늘어나는 동안 서류상 공장은 여전히 안전한 건물로 남을 수 있다. 실제 현장은 달라졌는데 관리대장만 그대로라면 제도는 이미 눈을 감은 것이다.
공장 화재는 ‘불 끄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능형 화재 조기감지체계 도입, 공정 위험도를 반영한 소방시설 기준 개선, 자체점검제도 보완, 건축물 피난·방화시설 관리체계 개선, 다부처 상시 합동점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공장 안전을 소방서 혼자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 소방당국이 같은 현장을 함께 봐야 한다. 공장 화재는 건물 문제이면서 노동 문제이고, 산업 문제이면서 재난 문제다.
대전 공장 화재의 희생자들은 불이 난 날 갑자기 위험해진 공간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위험은 이미 그곳에 쌓여 있었다. 설비가 늘고 동선이 바뀌고 경보가 의심받고 점검이 형식화되는 동안 위험은 조용히 몸집을 키웠다. 공장 화재를 대형 참사로 만드는 것은 불꽃 하나가 아니다. 그 불꽃이 번지도록 내버려 둔 구조다.
공장 화재를 ‘불만 잘 끄면 되는 사고’로 보는 한 같은 비극은 되풀이된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어느 직원이 실수했는지가 아니다. 왜 위험한 공정이 작은 공장이라는 이유로 낮은 기준 안에 머물렀는지, 왜 경보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됐는지, 왜 바뀐 공간을 아무도 통합적으로 보지 않았는지다. 참사를 막는 일은 화재 당일의 대응보다 훨씬 앞에서 시작된다. 벽과 통로와 경보와 점검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 그것이 공장 화재를 구조적 재난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